「이진과 제주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276
한자 梨津-濟州-
영어공식명칭 Ijin and Jeju's Ston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6년 07월 24일 - 「이진과 제주돌」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서 나관주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7년 - 「이진과 제주돌」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
관련 지명 이진포구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지도보기
채록지 이진리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인문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제주 돌|말
모티프 유형 제주도의 돌|이진포구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제주의 돌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이진과 제주돌」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남아 있는 현무암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해남군 북평면의 이진포구(梨津浦口)는 제주도와 육지를 이어 주는 포구이다. 제주도에서 배에 말을 실을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돌을 싣고 왔다가 돌아갈 때 이진포구에 돌을 내리고 대신 곡식을 실어 돌아갔다. 그래서 이진리에는 제주도의 돌이 많이 남아 있다.

[채록/수집 상황]

「이진과 제주돌」은 2016년 7월 24일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나관주[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편찬한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에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제주도에 목장을 설치하였다. 제주도는 땅이 척박하여 논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육지에서 곡물을 사다 먹어야 하였다. 요즘은 배의 아래 또는 옆에 바닷물을 넣어 배의 평형을 유지하지만, 예전에는 배에 무거운 돌을 실어 평형을 유지하였다. 옛날에는 제주도에서 말을 싣고 나올 때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하여 배 양쪽에 돌을 실은 후 가운데에 말을 실었다. 육지에 도착하고 나서는 가지고 왔던 돌을 내리고 대신 곡식을 실어 평형을 유지하였다. 제주도와 육지를 이어 주는 이진포구에도 제주도에서 배에 실어 온 현무암이 많이 남아 있다.

[모티프 분석]

「이진과 제주돌」의 모티프는 ‘제주도의 돌’, ‘이진포구’ 등이다. 이진리 주민들이 이진포구가 제주를 오가는 선박의 출입 통제소 역할을 하였으며,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나오는 ‘이진진(梨津鎭)’이 자신들의 마을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선박평형수(船舶平衡水) 역할을 하였던 제주도의 현무암이 마을에 산재하기 때문이다. 「이진과 제주돌」에는 제주도의 돌을 증거물로, 이진리가 역사적,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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