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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805
한자 水利契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원석

[정의]

경기도 화성시의 수도 재배 지역에서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조직된 수리 공동조직.

[개설]

수리계는 일반적으로 바닷가와 접하는 지역에 있는 개논[또는 방죽논]에서 조수를 막기 위한 방죽의 수문을 관리하고 방죽막이를 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화성 지역 여러 마을에도 수리계가 존재하였고 대표적으로 마도면 석교리 선방죽 수리계, 송산면 삼존리방죽계 그리고 같은 송산면의 독지리 방죽계 등이 있다.

[내용]

수리계는 본래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소규모의 수리 집단인 보계(洑契)로 불렸다. 일제 강점기 토지개량조합에서 저수지나 보와 같은 수리 시설을 관리하는 방식이 보급되면서 수리계라는 명칭이 보계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수리계가 결성된 것은 농가가 개별적으로 저수지나 보를 축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 마을 또는 몇 개 마을의 농민 집단에 의하여 공동으로 축조, 물을 관리 및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갯물이 들어오면 방죽논의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갯바닥을 논으로 만들 경우, 한 달에 두 번 만조 때 수문을 막아 주어야 했고 비가 많이 오면 빗물이 바다로 빠지게 수문을 열어 놓아야 했다. 물이 마르면 논바닥에서 염분이 올라와 벼가 타서 죽기 때문에 수문을 막아서 논바닥에 항상 물을 채워 놓아야 했다. 추수가 끝난 뒤 겨우내 논바닥에 물을 잡아 두기 위해서 수문을 막고 다음 해 봄에 모내기를 하기 직전에 수문을 터놓는다. 장마 때는 수문을 터 주어서 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며, 여름에는 또 수문을 막아서 고랑에 물을 담수시켜서 아쉬울 때 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유두사리나 백중사리처럼 바닷물의 수위가 가장 높을 때 바람이 밀물과 같은 방향으로 불면 방죽 너머로 바닷물이 넘쳐서 벼가 죽는 수도 있었다. 그 무렵은 벼 이삭이 팰 시기로, 이때 벼가 짠물을 먹게 되면 그냥 죽어버리기 일쑤였고, 바로 비가 오면 조금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벼가 얼마나 잘 되었나 유두사리와 백중사리 때 갯물이 [방죽 위로] 넘어 본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때에는 방죽 위로 물이 넘치는 일이 많았다.

수문관리는 그 방죽에서 농사짓는 사람 중 한 명이 맡아서 했는데, 이 사람을 ‘보주(洑主)’라 불렀다. 보주에게는 ‘보주벼’라고 해서 그 방죽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추수가 끝난 후에 벼를 걷어 주었다. 보주벼로 내는 벼의 양은 방죽의 크기에 따라 달라서, 작은 방죽에서는 두 마지기에 벼 한 말씩을 걷었으나 큰 방죽은 넓기 때문에 한 집에서 조금씩만 걷어도 전체 양이 많기 때문에 작은 방죽보다 적게 냈다.

과거의 방죽은 참죽나무를 켜켜이 쌓은 뒤 물이 새지 않도록 틈 사이에는 흙을 발라서 만들었지만, 현재는 사람이 손잡이를 돌려서 수문을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현황]

2015년 기준 화성시 관내 수리계는 총 60개가 존재한다. 수리계에 의한 수혜면적은 총 1,831㏊이고 계원수는 총 2,349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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