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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349
한자 唐恩郡
영어공식명칭 Dangeun-Gun
이칭/별칭 당성군,당성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이창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당성군에서 당은군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823년 - 당은군과 수성군 통합
개정 시기/일시 829년 - 당은군에서 당성진으로 개편
관할 지역 당은군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지도보기

[정의]

남북국 시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지역에 있던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당은군(唐恩郡)은 남북국 시대 신라의 행정 구역으로,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로 비정된다. 고려 초에 당은군의 옛 이름인 당성군(唐城郡)으로 개칭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당은군의 이전 명칭은 당성군인데, 757년(경덕왕 16)에 당은군으로 개칭되었다. 당시 신라의 대외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가 중국 대륙의 당이었기 때문에, 당과의 교역을 위한 창구 역할을 하는 지역에 '당은(唐恩)'이란 지명을 붙인 것으로 추측된다.

[관련 기록]

당은군과 관련한 기록은 주로 『삼국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리지에는 “당은군은 본래 고구려 당성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옛 이름으로 회복되었다.”라고 연혁을 밝히고 있으며, 신라본기에도 몇 차례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내용]

당은군은 한주(漢州) 소속이었다. 한주는 신라가 7세기 이후 설치한 9개의 주 가운데 하나로, 원래 이름은 한산주(漢山州)이다. 경덕왕 대의 지방 행정 구역 명칭 변경 때 한주로 개칭되었으며, 소경(小京) 하나와 27개 군, 46개 현을 관장하였다. 당은군은 한주가 관할하는 27개 군 가운데 하나였다. 당은군의 영현은 2개였는데, 차성현(車城縣)과 진위현(振威縣)이다. 차성현과 진위현은 모두 지금의 경기도 평택시 일원에 비정된다.

당은군에는 당항성과 당은포가 소속되어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항성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중국과의 해상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축조한 성으로,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구봉산 정상에 남아 있는 '화성 당성'으로 비정된다. 당은포는 당항성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포구로, 남북국 시대에 중국과의 교역 중심지로 번성하였다.

[변천]

당은군은 757년 이후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쳤다. 우선 주목되는 부분은 『삼국사기』에 당은군이 아닌 당은현으로 표기한 기록이 보인다는 점이다. 816년(헌덕왕 8)의 “한산주 당은현에서 길이 10척, 넓이 8척, 높이 3척 5촌의 돌이 저절로 100보를 움직였다.”라고 한 기록과 823년(헌덕왕 15) 2월의 “수성군과 당은현을 합하였다.”라고 한 기록이 그것이다. 당은군과 당은현이 동일 지역을 지칭하는 것은 분명한데, 군에서 현으로 강등된 것인지 단순한 기록의 잘못인지는 알 수 없다.

또 823년에 당은군과 수성군을 통합하였다고 하는데, 통합의 이유나 목적도 분명히 알기 어렵다. 당은군과 수성군을 통합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829년(흥덕왕 4)에는 당은군을 다시 분리하여 군사적 기능을 담당하는 당성진(唐城鎮)으로 만들었다. 당성진은 고려 초에 당성군으로 개칭되었으며, 이후로 '당은'이란 지명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당은군은 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해상 교통의 길목을 관장하고 행정적으로 통제하는 중요 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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