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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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益山郡誌 |
영어공식명칭 | A Chronicle of Iksan-gun|Iksangunj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귀성 |
[정의]
1932년 소기영이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인문 지리적 사항에 관하여 펴낸 책.
[개설]
『익산군지』는 소기영(蘇祈永)이 일제 강점기인 1929년부터 저술하기 시작하여 1931년 출판 허가를 얻어 1932년에 발행한 인문 지리지이다.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해당하는 당시 익산군 지역의 역사·지리·행정·인물·유교의 사우 등에 대하여 두루 다루고 있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과 익산시 신용동에 있는 원광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지적 상황]
『익산군지』의 표제는 노란색 표지에 가로글씨 한문 인쇄체로 ‘익산군지(益山郡誌)’라 되어 있다. 판권에는 1932년에 인쇄·발행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발행소는 익산읍지중간사무소(益山邑誌重刊事務所)이다. 저작 겸 발행자인 소기영은 『익산군지』의 「인물」 편에 나오는 내용으로는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 호는 정산(情山)이고 고종 때에 정삼품 통정대부(通政大夫), 경궁참서관(慶宮參書官) 등을 지낸 인물이다.
[형태]
가로 19.0㎝, 세로 27.0㎝ 크기에 5권 2책, 390쪽이며, 활판은 납 활자로 만든 연활자본(鉛活字本)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익산군지』의 책머리에는 편찬자인 소기영과 정희석(鄭熙碩)이 쓴 서문이 실려 있고, 그다음으로 범례(凡例)가 이어진다. 범례에서는 거리와 방향의 기준점이 군청 소재지이고, 모든 내용이 1929년을 기준으로 하였다는 등 각 항목의 서술 기준을 밝히고 있다. 책의 끝에는 정희면(鄭熙冕), 남궁욱(南宮煜), 김용철(金容喆), 강기형(姜基馨) 등 네 명의 발문이 각각 실려 있다. 총 2책, 5권, 117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내용을 각권마다 간략히 살펴보면, 권1에는 「군명(郡名)」·「지세(地勢)」·「군청소재지」·「건폐군연혁(建廢郡沿革)」·「강역(疆域)」·「도로」·「역원(驛院)」·「장시(場市)」·「진관겸대(鎭管兼帶)」 등 쉰아홉 개 항목이 실려 있어, 대체로 조선 시대에 편찬된 읍지의 일반적인 구성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권2에는 「단사(檀社)」·「향교」·「원우(院宇)」·「신사(神社)」·「사찰」 등 열아홉 개 항목을 실었다. 행정기관·경찰기관·통신기관·금융기관·회사·공장 등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여러 관공서와 시설을 수록하였다.
권3에는 「마한흥폐(馬韓興廢)」·「마한고사(馬韓古事)」·「금마유사(金馬遺事)」 등 여섯 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익산군의 연원을 중국 고대의 주(周)나라까지 소급하고 특히 「마한고사」에는 한성제(漢成帝) 홍가원년(鴻嘉元年), 한애제건원원년(漢哀帝建元元年) 등 중국의 연호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는데, 익산 지역의 유림들이 중국에 기대어 역사 기록의 정통성을 보장받고자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점에서 『익산군지』는 역사 서술의 자주성이라는 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인 당시의 익산 지역에서 유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음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권4에는 「인물」·「명환(名宦)」·「충신」·「의절(儀節)」·「공신(功臣)」 등 열한 개 항목이 실려 있다. 「인물」에는 고려 후기에 이 지역에서 활동한 이주(李湊)·이공수(李公遂) 등부터 조선 후기 한백겸(韓百謙)·이귀(李貴) 등에 이르기까지 열일곱 명을 수록하였다.
권5에는 「유현(儒賢)」·「충현(忠賢)」·「남대(南臺)」·「유일(遺逸)」 등 스물두 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책 말미의 판권 서지 사항을 보면 『익산군지』는 1931년 출판 허가, 1932년 재판 허가를 얻었고 1932년에 소기영이 편찬하여 진곡인쇄소(眞谷印刷所)에서 인쇄하고 익산읍지중간사무소에서 간행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에 서책의 출판이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익산군지』의 책 내용을 보면 지리적 범주는 익산군, 여산군, 함열군, 용안군 등 네 개 군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네 개 군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익산군으로 병합된 곳이다. 주요한 참고 문헌으로는 『여지승람(輿地勝覽)』과 『문헌비고(文獻備考)』 등을 참조하여 작성되었다. 모든 방향과 거리 등은 네 개 군의 군청 소재지를 기준으로 삼았으며 인물과 직책 등은 구본(舊本)의 내용을 기준으로 작성하였다. 과거 합격과 관련한 사항은 연대별로 정리하였다. 유림이나 충신 등의 인물은 종합적인 평판을 고려하려 수록하였고. 효자·효부·열녀 등도 각각의 행적을 고려하여 수록하였다. 묘소나 사당 등은 성씨별로 고증하여 내용에 따라 수록하였다. 글이나 글씨 등은 연대별로 수록·제시하였으나 분량이 많아 중복될 수 있음도 밝히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익산군지』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2년의 익산군이 처한 제반 사정을 담은 인문 지리지로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익산 지역의 역사적 기원을 중국 고대의 주(周)나라까지 소급하거나, 「마한고사」에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는 등의 내용으로 보아 역사 서술의 자주성이라는 면에서는 한계를 띠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한계는 『익산군지』 편찬에 참여한 익산 지역 유림들이 중국에 기대어 정통성을 보장받으려고 하였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