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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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補丁紅牌 |
영어공식명칭 | Lee Bojeong Hpongp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미륵산1길 8[기산리 367]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연안이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보정의 과거 급제증.
[개설]
과거에 급제하면 급제증을 왕의 명령으로 발급하는데 이를 교지(敎旨)라고 하였다. 문과 급제증은 홍패(紅牌)라고도 불렀는데, 그것은 붉은색 바탕의 종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문과 급제자에게는 홍패를 주었고, 소과(小科), 즉 생원시나 진사시의 합격자에게는 하얀색 종이로 되어 있는 백패(白牌)가 지급되었다. 이보정 홍패(李補丁紅牌)는 1420년(세종 2) 3월 22일에 발급한 문서로, 승사랑 의영고 부직장 이보정이 을과 제2인 급제 출신으로 합격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보정 홍패를 비롯한 연안이씨 종중 문적(延安李氏宗中文籍)이 1979년 2월 8일 보물 제651호로 지정되었으며,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기산리 충간공보물651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이보정 홍패는 이보정이 1420년(세종 2)에 실시한 경자식년시(庚子式年試) 문과에 급제했을 때 받은 교지이다. 이보정은 자는 순보(淳甫), 호는 남곡(楠谷), 본관이 연안(延安)이다. 조선이 건국하고 이듬해인 1393년(태조 2)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지보주사(知甫州事) 이백겸(李伯謙), 할아버지는 전의감정(典醫監正) 이량(李亮), 증조할아버지는 이계손(李係孫)이다. 스물여덟 살에 문과에 급제한 이보정은 관직이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이르렀다.
[형태]
75×69㎝ 크기의 붉은색 종이 한 장에 검은색 글씨로 이보정의 합격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교지 따위에 찍는 임금의 금도장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연호 부분에 찍혀 있다.
[구성/내용]
이보정 홍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지(敎旨)/ 승사랑의영고부직장 이보정(承仕郞義盈庫副直長李補丁)/ 을과 제이인 급제 출신자(乙科第二人及第出身者)/ 영락 18년 3월 22일(永樂十八年三月二十二日).”
‘승사랑 의영고 부직장’은 이보정이 문과에 응시할 당시의 직책을 말한다. 승사랑은 종8품의 품계이며, 부직장은 상서원(尙瑞院)에 속한 정8품의 관직이다. 그러니까 이보정은 현직에 있으면서 문과에 도전하였던 것이다. 이보정이 문과 급제 이전에 맡고 있던 관직은 음직(蔭職), 곧 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이었다.
‘을과 제이인 급제 출신자’는 이보정이 을과에서 두 번째 성적으로 급제를 받았다는 의미이다.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의 성적은 으레, 갑과(甲科), 을과(乙科), 병과(丙科)로 나뉘었고, 각 과(科)에는 어떤 종류의 문과냐에 따라 정해진 인원이 있었는데, 조선 전기만 해도 갑과의 구분은 없었다. 을과가 가장 높은 성적이었다. 따라서 이보정은 경자식년시 문과 급제자 33명 가운데 두 번째 성적으로 급제를 받았던 것이다. ‘영락’은 명나라 제3대 황제인 성조(成祖)의 연호(年號)인데, 영락 18년이면 조선 세종 2년에 해당한다.
이보정은 1426년(세종 8) 서상관(書上官)으로 중국 북경에 사신(使臣)으로 다녀왔으며, 예조좌랑(禮曹佐郞), 동부지돈녕부사(同副知敦寧府事), 판김포현사(判金浦縣事),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이조참의(吏曹參議), 예조참의(禮曹參議),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공조참판(工曹參判) 등의 관직을 지냈으며, 1456년(세조 2) 2월, 예순네 살을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한편 이보정의 아들인 이숭원(李崇元)도 문과 급제자였는데, 이숭원이 성종 즉위에 공을 세워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공훈을 칭송하며 상을 줄 때. 이보정도 연천군(延川君)에 봉하여졌다.
[의의와 평가]
이보정 홍패는 조선 전기의 홍패 양식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