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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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安金氏 |
영어공식명칭 | Yongan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67년 - 김덕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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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96년 - 김덕령 사망 |
본관 | 용안 -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
성씨 시조 | 김덕령(金德齡) |
[정의]
김덕령을 시조로 하고, 용안을 본관으로 하는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세거성씨.
[개설]
용안김씨(龍安金氏)는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용안은 지금의 익산시 용안면 일대이며, 조선 시대에는 용안현이었다.
[연원]
1978년에 간행된 『용안김씨족보(무오보)』에 따르면 용안김씨 시조 김덕령은 신무왕의 셋째 아들인 경주김씨(慶州金氏)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광산김씨(光山金氏) 분관조 김흥광(金興光)의 31세손이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으나 모함을 받아 옥사하였고, 부인인 흥양이씨(興陽李氏)도 자결하였다. 이후 아들 김광옥(金光沃)이 전라도 용안으로 몸을 피하여 숨어 살면서 본관을 용안으로 바꾸었다.
김광옥은 용안에 피신하여 살다가 외삼촌인 만송당(萬松堂) 이인경(李寅卿)[1567~1634]의 부임지인 평안도 안주군 운곡면 쇠꼴이란 곳에 정착하여 용안김씨 후손들의 본향이 되었다.
용안김씨 가문의 인물로는 1816년(순조 16) 실시된 병자식년시 진사과에 합격한 김익수(金益秀)와 1861년(철종 12) 실시된 신유식년시 진사과에 합격한 김응간(金應簡)이 있다. 합격 당시 김익수의 거주지는 서울이었으며, 김응간의 거주지는 안주였다.
[현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는 용안김씨 관련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50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시도별로 살펴보면 서울특별시 164명, 부산광역시 38명, 대구광역시 1명, 인천광역시 18명, 광주광역시 4명, 대전광역시 20명, 울산광역시 5명, 경기도 151명, 강원도 26명, 충청북도 25명, 충청남도 6명, 전라북도 8명, 전라남도 7명, 경상북도 9명, 경상남도 17명, 제주특별자치도 1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