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1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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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裡里農林學校 |
영어공식명칭 | Iri Agriculture and Forestry School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시 지역에 있었던 교육 기관.
[교육 목표(교훈 포함)]
농림학교는 일제 강점기에 농업과 임업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던 실업 학교였다. 이리농림학교는 1922년 농업 진흥과 농림 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개교 당시 전국 유일의 갑종[5년제] 공립 농림학교였으며 조선의 근대 농업 지도자를 양성하는 최초의 농업 전문 교육기관이었다.
[변천]
1922년 4월에 설립된 이리농림학교는 1947년 이리공립농림중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51년 이리농림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1991년 이리농림고등학교가 국립 이리농공전문대학으로 승격 개편되면서 이리농림고등학교는 1993년에 폐교되었다. 1999년 국립 이리농공전문대학에서 국립 익산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2008년 국립 익산대학이 전북대학교와 통합하면서 전북대학교 특성화캠퍼스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 활동]
이리농림학교는 농과·임과로 나누어 조선과 일본 학생을 반반씩 선발하였는데 전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1931년에는 수의축산과가 증설되었다. 이리농림학교는 한국 근대 농업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졸업생들은 영농 종사는 물론 농업 관련기관을 비롯해 학계·정계·재계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근대화 및 농업 선진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
[현황]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 명문교였던 이리농림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광복이 될 때까지 끊임없는 항일운동이 전개되었는데, 1945년 항일투쟁 비밀조직인 화랑회 사건으로 농과 4학년 이상운이 옥사하였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터로 달려가면 일본 육군복이 되는 교복을 입은 이리농림학교 학생들을 정규군처럼 훈련시켜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1932년 건립된 이리농림학교 축산과 교사는 ‘익산 구 이리농림학교 축산과 교사’라는 명칭으로 2005년 6월 18일 국가등록문화재 17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북대학교 특성화캠퍼스[전라북도 익산시 마동 194-5] 내에 있는 이리농림학교 축산과 교사는 항일운동과 민족 차별, 식민지 교육 철폐를 벌였던 익산 학생 비밀조직의 발상지이자 학생 운동지로 뜻 깊은 문화재이다. 2019년 7월 8일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이 국가등록문화재 제758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