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1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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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圓光大學校博物館所藏冠帽 |
영어공식명칭 | An Official Hat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복/의복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대로 460[신동 272]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
집필자 | 안여진 |
소장처 | 원광대학교 박물관 -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대로 460[신동 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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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복식 |
재질 | 견|모|직|금속|석 |
관련 의례 | 국상|제향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 있는 원광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관모.
[개설]
관모(冠帽)는 기본적으로 머리를 보호하려고 착용하는 복식류이며, 미적 감각을 살리고 신분과 계급을 표시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관모는 크게 관(冠)·입(笠)·건(巾)으로 나뉘는데, 먼저 관에는 재료나 형식에서 고대의 금동관을 비롯하여 면류관·익선관·원유관·양관·정자관·주자관·동파관·충정관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흔히 말총으로 만들었다. 입(笠)은 우리말로는 ‘갓’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 관모 중에서 가장 일반화된 것이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천을 보이다가 조선 시대에 와서 확립되었다. 입은 방립(方笠)에서 패랭이[平陽子], 초립(草笠), 흑립(黑笠)의 단계로 발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巾)은 관모 중에 가장 간단한 것으로, 천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흑색의 베·모시·무명·말총 등으로 만들었으며, 탕건·유건·복건·망건 등이 있다. 이 밖에도 관모에는 방한용의 난모(暖帽), 비를 피하는 용도의 우모(雨帽), 혼례 때 여성들이 착용하는 족두리, 화관 등이 있다.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 있는 원광대학교 박물관에는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 사이에 제작된 동파관, 양관, 정자관, 흑립, 탕건, 유건, 난모, 화관 등 다양한 관모가 전시되어 있다. 원광대학교 박물관은 1968년에 개관한 이래로 구매하거나 기증받는 식으로 꾸준하게 다양한 관모를 수집하였고, 발전 과정과 종류 및 기능에 따라 관모를 전시하고 있다.
[연원]
관모는 고대부터 개항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고대의 관모는 각종 사서나 고구려의 고분벽화, 백제·신라의 고분 출토 유물 등을 보면 관모에 새깃이나 금·은 등으로 장식하는 관식(冠飾)이 애용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백제는 복식의 계급적 분화가 일찍부터 이루어져 관모도 금과 은으로 장식하여 계급의 등위를 가렸는데, 1986년 익산 입점리 고분 86-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모(金銅冠帽)에서 성숙하고 세련된 귀족문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남북국 시대의 통일신라 이후로는 복두(幞頭)가 일반적으로 쓰인 듯한데, 그런 흔적을 현재 남아 있는 토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문라(紋羅)로 만들어 계급에 따라 색을 달리한 문라건을 비롯하여 몽고식의 발립(鈸笠), 발립 밑에 쓰는 두건이 있었고, 고려 후기에는 명나라의 관모를 도입하여 왕은 면류관을 쓰고 신하는 사모를 썼다.
조선 시대에는 사회적 질서를 위해 예(禮)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데, 특히 의관(衣冠)을 중요시하여 실내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외출할 때, 일을 할 때에도 관모를 착용하였다. 관모를 착용하지 않을 때는 변소에 갈 때, 침상에 들 때, 죄수가 되었을 때 정도이다. 조선 시대에 선비들은 사람들에게 맨 상투를 보여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집 안에서도 관모를 쓰고, 상투관이나 방건, 정자관 등을 착용하였다. 이러한 전통적인 관모는 개화기 이후로 중절모가 들어와 일반화되면서 퇴조하였다.
[형태]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관모 중에서 백사모[won2237]는 1967년 12월 5일 죽산박씨의 후손인 박영식(朴榮植)[1897~1977]이 백사모, 백각대, 백화 및 조복 등과 함께 기증한 것이다. 소장본 백사모는 함께 기증한 국상복과 한 묶음으로 제작된 것으로, 죽산박씨인 박주현(朴周鉉)[1844~1910]·박해창(朴海昌)[1876~1933]의 2대가 착용하던 것이다. 말총으로 제작하였고 전면은 턱이 있고 뒤쪽에는 양쪽으로 날개가 달려 있다.
양관은 1973년 9월 7일 구매한 것[won2238, won2239]과 1978년 3월 1일 민속학자인 남강 김태곤 박사가 기증한 양관[won2960]이 있다. 김태곤 박사가 기증한 양관은 1964년 5월 13일에 촬영한 무녀 밤쥐 최인순의 신당 사진으로 보아 밤쥐 최인순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의 앞면 중앙의 윗부분에 금색의 세로선이 다섯 줄이 있고 머리둘레와 뒷부분의 덩굴무늬 문양에는 도금을 하였으며, 관을 가로지르는 목잠(木箴)[금관의 장식을 위하여 관을 가로지르는 금박 나무 막대]은 금박을 하였다.
동파관[won6089]은 1973년 9월 7일에 구매하였다. 송(宋)나라의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만들었다고 해서 소식의 호를 따서 ‘동파관’이라 한다. 말총 재질로 네 개의 관이 상·하 이중으로 겹쳐져 있다. 착용하지 않을 때는 반으로 접어 보관할 수 있는 구조이다.
복건[won8101]은 1973년 9월 7일에 구매한 것으로, 형태는 두건형이며 합성섬유로 제작한 것이다.
정자관[won2235]은 1973년 9월 7일 구매한 것으로, 말총을 엮어 만들었고 2층으로 된 관으로 위가 터져 있으며, 상부의 전후좌우에 네 개의 뾰족한 봉우리 형태를 하고 있다.
흑사모[won6094, won6095]는 1973년 9월 7일에 구매한 것으로, 두꺼운 골판지로 모체를 만들고 그 위에 흑포를 발랐으며 양 옆에 둥근 익각(翼角)이 부착되어 있다. 재질로 보아 혼례용 사모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유건[won8086]은 윗부분의 양측에 귀가 나 있으며 바탕은 검은색이다.
[용도]
백사모는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국상(國喪) 때에 삼베로 만든 마포 단령(麻布團領)과 함께 착용하는 사모이다. 조선 전기 1426년(세종 8년) 2월 관복 제정 때 상복에 사모를 착용하게 하여 조선 후기까지 가장 흔하게 쓰였다. 양관은 문무관이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조복(朝服)과 함께 착용하는 관모이다. 동파관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평상시 집안에서 착용하던 관모이다. 유건은 유생들이 흑단령과 함께 착용하던 것이다. 향교나 서원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관모는 머리를 보호하려고 착용하는 복식류이면서 신분과 계급을 표시하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현대에 들어서 무속인들이 굿을 연행할 때 신을 표현하고자 양관을 착용하는 사례도 있다. 김태곤 박사가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한 양관은 무속인이 착용하던 것이었다는 점에서 관모의 변천 과정을 알려 주는 민속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