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1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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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瓢翁宋英耉-中國使臣朱之蕃-因緣 |
영어공식명칭 | The Relationship Between Pyoong Song-Younggu and Zhu-Zuban, the Chinese Envoy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윤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9년 12월 27일 - 망모당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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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1년 - 「표옹 송영구와 중국 사신 주지번의 인연」 소병창과 송양규에게 채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7년 - 「표옹 송영구와 중국 사신 주지번의 인연」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 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망모당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356 |
채록지 | 남중동 -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대로22길 38[남중동 173-14] |
채록지 | 동용리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동용리 280-5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송영구|주지번 |
모티프 유형 | 표옹 송영구와 중국 사신 주지번의 사제지간의 인연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에 전하여 오는 망모당액자 편액에 얽힌 이야기.
[개설]
「표옹 송영구와 중국 사신 주지번의 인연」은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의 망모당액자(望慕堂額字) 편액에 얽힌 이야기이다.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耈)[1556~1620]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출생하였다. 평소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이었던 송영구는 1618년(광해군 10)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여 정청에 불참하였다는 이유로 관직에서 파직된다. 이후 익산 왕궁(王宮)에 낙향하여 있을 때, 북경에서 알게 된 주지번(朱之蕃)[?~1624]이 조선의 사신으로 자원하여 익산 왕궁까지 내려와 송영구를 만나고 갔다. 이때 주지번이 남긴 것이 망모당액자 편액이다. 망모당은 송영구의 집 후원에 있는 누정인데, 우산(紆山)에 위치한 선영(先塋)을 망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표옹 송영구와 중국 사신 주지번의 인연」은 2011년에 소병창과 송양규의 구술 내용을 채록한 것으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전주에 가면 객사가 있다. 객사의 대형 현판으로 걸린 ‘풍패지관(豊沛之館)’은 중국 명나라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주지번의 초서(草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지번이 1606년(선조 39) 조선 사신단의 정사(正使) 한림원수찬(翰林院修撰)으로 오면서 꼭 만나고 싶은 이가 있었다. 바로 선조 때의 문인 표옹 송영구이다. 송영구와 주지번의 인연은 많은 사람에 의하여 전하여지고 있다. 표옹 송영구는 1593년 서장관(書壯官) 직분으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송영구가 북경에 있는 동안 숙소 아궁이에서 불을 때던 한 청년을 마주하였다. 청년은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도 장자(莊子)의 남화경(南華經)을 계속 읊조렸다. 송영구는 청년을 불러 사정을 듣고는 조선의 과거 시험에서 통용되는 답안 작성법을 사사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청년에게 몇 권의 책과 돈까지 주며 격려하였다. 그 청년이 바로 표옹을 만난 지 2년 뒤인 1595년에 명나라의 과거 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한 주지번이다.
이후 주지번은 송영구를 스승으로 섬기고, 조선의 사신단으로 오기를 수시로 청하였다. 1606년 조선 사신단의 정사로 온 주지번은 조선에 오자마자 스승 송영구를 찾았다. 하지만 주지번은 송영구가 익산 왕궁으로 낙향하여 망모당을 짓고 산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주지번은 익산 왕궁에 있는 송영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전주 객사에 들러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는 현판 글을 남기고, 익산 왕궁에 가서는 망모당(望慕堂)의 편액을 남겼다. 망모당의 편액을 통하여 송영구와 주지번의 인연이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모티프 분석]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주지번이 표옹 송영구를 북경에서 만나고 나서 2년 후인 을미년(1595)에 명나라의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송영구와 주지번의 스승과 사제에 관한 인연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된 망모당의 편액을 통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망모당의 편액은 주지번이 익산으로 송영구를 만나러 와서 직접 글씨를 썼다는 설과 전주에 내려오지 않고 한양에서 썼다는 설이 현재 양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