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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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風面桃花里洞祭 |
영어음역 | Cheongpung-myeon Dohwa-ri Dongje |
영어의미역 | Dohwa-ri Village Ritual in Cheongpung-myeon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의례 장소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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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신앙|서낭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4일 |
신당/신체 | 큰서낭, 작은서낭|소나무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도화리 동제는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서낭당이 위치한 ‘서낭대이’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동신(洞神)에게 무병과 풍년을 빌며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도화리에서 서낭제를 언제부터 지냈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충주댐으로 마을이 수몰되기 이전에는 도화리 내의 5개 반 모두 서낭제에 참여하였으며, 당목으로 수느티나무와 암느티나무가 각각 있었다고 한다.
제일(祭日)은 마을 위편에 자리하고 있는 정방사 스님이 잡아 주었다. 제물 구입은 청풍장에서 주로 하였으며, 제의 시작 전과 후에 마을 풍물패들이 풍물을 치면서 축관과 제관을 보내고 받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마을 수몰 이후에는 1985년 마을자랑비 앞에 큰 소나무를 심고, 다음 해에 작은 소나무를 심어 당목으로 정했다. 이를 각각 ‘큰서낭’과 ‘작은서낭’으로 부르며, 20m 정도 떨어져 있다. 현재 금줄은 큰 소나무와 작은 소나무에 걸쳐 치지만, 제의는 마을자랑비를 향해 지낸다. 수몰 전처럼 각각의 당목에서 지내지는 않는다.
[신당/신체의 형태]
도화리 서낭당은 마을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도로의 건너편 청풍호 쪽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낭대이’라고 부른다. 큰서낭과 작은서낭의 신체는 모두 소나무이다.
[절차]
정월 초하루에 마을 전체에서 부정하지 않은 50세 이상의 남자 중 제일(祭日)과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을 가려 공양주, 제관, 축관 등을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7일 동안 금기를 지켜야 한다. 제일 3일 전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제비(祭費)는 수몰 전에는 집집마다 쌀을 거두어서 지냈는데, 마을을 옮기고 난 후에는 마을 공동 기금에서 충당한다.
제물은 제일 3일 전에 공양주가 제천장에서 구입한다. 제물로는 북어, 밤, 대추, 곶감, 사과, 배, 산자, 간장, 김, 어탕, 떡 등을 진설한다. 특히 북어는 다섯 마리가 소요된다. 제주(祭酒)는 구룡리 양조장에 특별히 부탁하여 쓴다. 제일 초저녁부터 공양주 집에서 축관, 제관 등이 모여 제물을 준비한다. 떡은 쌀 3되 3홉의 분량으로 백설기를 찌며, 새옹메는 3홉 분량으로 한 그릇을 지어 큰서낭에만 올린다.
제물 준비가 끝이 나면 밤 11시 30분경에 제물을 지고 제장으로 옮긴다. 큰서낭 몫을 실은 지게가 먼저 나가고, 작은서낭 몫을 진 지게가 나중에 나간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진행된다.
[부대 행사]
서낭제가 끝나고 나서는 마을 잔치를 벌인다. 수몰되기 전에는 풍물패를 앞세워 줄다리기, 지신밟기, 윷놀이 등을 하였다. 특히 줄다리기는 도화리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에서도 함께 참여하였다. 설날이 지나면 각기 마을에서 가져온 짚을 함께 엮어 줄을 만들어 준비해 두었다. 먼저 어린아이들의 줄다리기로 시작하는데, 본격적인 줄다리기에서는 많게는 한 편에 300~400명이 참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