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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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38煙臺 |
영어음역 | 38 Yeondae |
영어의미역 | 38 signaling sit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철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에 제주시에 있는 산 정상부에서 횃불과 연기로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조선 전기의 통신 수단.
[개설]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烽)은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뜻하고, 수(燧)는 설나무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 하며,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들어 통보하는 제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봉수는 높은 산이나 해안 구릉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였다. 따라서 봉수제는 우역제(郵驛制)와 더불어 신식 우편과 전기 통신이 창시되기 이전의 근대 국가에서는 가장 중요한 군사용 통신이었다.
봉수는 역마(驛馬)나 인편보다는 시간적으로 단축되었다. 신속한 효용성을 발휘하여 지방의 급변한 민정상황, 국경지방의 적의 동태를 상급기관인 중앙의 병조에 연락하였던 봉수제는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정보를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중국의 주(周)나라에서 유래된 봉수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즉 삼국시대 초기의 기록에 봉화와 관련된 지명과 봉화를 올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에는 봉수가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봉수제가 처음으로 법제화된 것은 1149년(고려 위종 3)에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 조진약이 올린 장계에 의하면 “봉수식을 정하여 평상시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를 각각 하나로 하고, 2급 비상이면 둘, 3급 비상이면 셋, 4급 비상이면 넷을 올리도록 하고, 각 봉수대에는 방정(防丁) 2명과 백정(白丁) 28명을 배치하되 그들에게 평전(平田) 1결씩을 지급토록 하고”있다.
조선 시대 1419년(세종 1)에 이르러 종래에 계승되어 온 고려의 봉수제를 바탕으로 당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여 거화거수(擧火炬數) 등 관계규정을 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해안의 봉수와 연대를 새로이 축조하고, 나아가 봉수의 선로를 일제히 획정하였다. 즉 별일이 없을 때는 1개, 적이 해안에 나타나면 2개, 해안에 가까이 오면 3개, 우리 병선과 접전시에는 4개, 상륙시에는 5개를 올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주도의 봉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동사강목』에 탐라에 봉수를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되어 있다. 1439년(세종 21)에는 22개가 설치되었고,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탐라방영총람』에 비로소 봉수와 연대가 구분되었다. 정조 연간에 편찬된 『제주읍지』에 와서 정의현의 수산봉수와 종달연대가 설치됨에 따라 이 무렵에 도내 봉수 25개소, 연대 38개소가 정비되었다. 설치된 연대의 규모는 높이와 너비를 각 10자로 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제주도 내 연대중 제주목에 소속된 연대는 18개소, 정의현에 소속된 연대 11개소, 대정현에 소속된 연대 9개소로 모두 38개소이다. 제주목에는 두모연대↔배령연대↔마두연대↔죽도연대↔우지연대↔귀덕연대↔애월연대↔남두연대↔조부연대↔수근연대↔별도연대↔조천연대↔왜포연대↔함덕연대↔무주연대↔좌가연대↔입두연대↔남두연대↔정의현의 오소포연대와 상응한다.
정의현에는 오소포연대↔협자연대↔말등포연대↔천미연대↔소마로연대↔벌포연대↔금로포연대↔우미연대↔보목연대↔연동연대↔변수연대↔대정현의 마희천연대와 상응한다. 대정현에는 마희천연대↔대포연대↔별로천연대↔당포연대↔산방연대↔무수연대↔서림연대↔우두연대와 제주목의 두모연대와 상응한다.
[변천]
1439년(세종 21) 제주도안무사 한승순이 올린 장계에 의하면 제주에는 봉수가 22개소가 설치된 것으로 되어 있다. 제주목에 10개소, 정의현에 7개소, 대정에 5개소가 설치되었다. 그 후 봉수에 대한 정비를 통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봉수는 23개소로 제주목에 8개소, 정의현에 10개소, 대정현에 5개소가 설치되었다. 또한 봉수는 높은 산정에 위치하는 등 구체적으로 설치된 봉우리(오름)가 표기되어 있다. 또한 17세기에 기록된 『탐라지(耽羅誌)』에는 25개소로 제주목에만 2개소가 증설되었다. 그 후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탐라방영총람』에 비로소 봉수와 연대가 구분되었고, 봉수 24개소, 연대 37개소가 시설되었다. 그리고 정조 연간에 편찬된 『제주읍지』에 와서 정의현의 수산봉수와 종달연대가 설치됨에 따라 이 무렵에 도내 봉수 25개소, 연대 38개소가 정비되었다.
그 후 봉수와 연대는 명칭만 다를 뿐, 25봉수와 38연대가 유지되다가 1811년(순조 11)에 연대 8개소가 폐쇄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는 모슬봉수와 8개의 연대가 폐쇄되어 제주에는 24봉수와 30연대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제주도에는 38개 연대가 있는데, 대부분 해안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연대는 가까이서 적선의 출몰과 어떤 곳에 와서 정박하는 가를 자세히 관찰하는 동시에 해안 변경인 최전방에 위치한 연변봉수의 기능을 수행했다. 따라서 연변봉수의 기능을 돕기 위하여 요새적인 시설인 연대를 구축하였다. 해안 구릉에 위치한 연대는 급한 소식을 서로 상응하는 연대에 전하는 한편, 동시에 가까운 봉수에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
도내의 연대 중 형태 확인이 가능한 17개소 중 15개소가 방형으로 허튼층쌓기로 석축되어 있다. 하지만 왜포와 연동연대는 원형이고, 왜포연대는 내·외벽의 2중 벽체이다. 연대의 규모는 한 변의 길이가 6~10m 내외가 대부분이다. 연대의 규모의 평균치는 장축이 7.9m, 단축이 7.2m로 자연지형에 적합하게 축조되었다. 또한 해안과의 이격거리가 100m 미만이 21개소이고, 나머지는 200m 이내가 대부분이다. 상응하는 연대와의 이격거리는 7㎞ 이내가 29개소이고 가장 먼 거리는 함덕연대와 무주연대로 13㎞ 정도이다.
[의의와 평가]
제주도 내 해안 구릉에 위치한 연대는 연대와 연대, 혹은 내지봉수와 연결하는 연변봉수의 기능을 담당하는 등 제주의 관방시설을 연구하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