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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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軒集 |
영어음역 | Bukhyeonjip |
영어의미역 | Posthumous Works of Bukh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상조 |
성격 |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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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춘택(金春澤) |
간행자 | 김두추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인인 김춘택(金春澤)이 저술한 문집.
[개설]
김춘택은 늘 당쟁의 와중에 있었다. 1701년 탄핵을 받아 전라북도 부안으로 유배되었다가 1706년(숙종 32) 제주로 이배되어 이후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배 생활을 하였다.
유배객이었던 김춘택은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인물들에 비해 행적이 초라한 감이 있다. 그러나 김춘택은 당대의 대문장가인 종조부 서포 김만중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당대에 문장으로 자신을 따를 자가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북헌은 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서지적 상황]
목활자본이고 20권 7책으로, 규장각 도서이다. 김춘택이 「수해(囚海)」, 「취산(鷲山)」, 「은귀(恩歸)」, 「습유(拾遺)」의 네 편을 선집한 것을 후에 손자 김두추가 유고(遺稿) 「노산록(盧山錄)」을 더하여 간행한 것이다.
[구성/내용]
김춘택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에 대한 답가로 「별사미인곡(別思美人曲)」을 지었으며,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와 자신의 종조부인 김만종의 「사씨남정기」를 한역하기도 하였다.
김춘택은 「제주동천적거기(濟州東泉謫居記)」에서 유배 살이를 “모든 것이 육지와 다르지 않은 것이 없고, 육지의 소식은 진실로 소문으로도 들을 수 없어서 간혹 몇 달이나 해를 넘기도록 두절되어 벼슬 온 사람들도 모두 두려워하고 슬퍼한다”고 하면서 “하물며 유배임에야!”라고 절절히 말하였다.
김춘택은 제주 유배 기간 동안 적지않은 시문을 남겼는데 이는 이러한 참담한 삶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김춘택의 문집 『북헌집』 중에서 「초년록(初年錄)」과 「수해록(囚海錄)」은 바로 제주 유배 기간 동안에 쓴 시문집이며, 이밖에도 「취산록(鷲山錄)」 「은귀록(恩歸錄)」에도 제주도 유배 기간 중에 쓴 시가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