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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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貞淑 |
영어음역 | Choe Jeongsu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동 948 |
시대 | 근대/근대 |
성격 | 항일운동가|학생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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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동 948 |
성별 | 여 |
생년 | 1902년(고종 39) |
몰년 | 1977년 |
본관 | 탐진(耽津) |
대표경력 | 신성여자고등학교 교장|대한적십자사 제주지사 부지사장|초대 제주도교육감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탐진(耽津). 아버지는 초대 제주지방법원 법원장을 지낸 최원순(崔元淳)이다.
[활동사항]
유치원에 다닐 때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1909년(순종 3) 4월 신성여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3월 강평국(姜平國) 등과 함께 제1회로 졸업하였다. 1915년 서울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3월 졸업하였으며, 1919년 경성관립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79명에 이르는 소년결사대를 이끌고 미국영사관 주변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학생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되기까지 서대문형무소에서 8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여성 교육과 여성 계몽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21년 3월 여성의 문맹퇴치 강습소인 여수원(女修園)을 개원하였는데, 이후 명신학교에 통합되면서 교직을 맡았다. 1925년 목포의 소화학교(昭和學校)에서 교편을 잡았고, 1931년 신부 김양홍(金洋洪)의 권유로 전주의 해성학교(海星學校)로 옮겨 재임 중 민족혼을 일깨우는 노래를 지도하였다는 것이 문제되어 잡혀가기도 하였다.
1939년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42년 3월 졸업하였다. 서울 성마리아병원에 부임하여 이화여자고등학교의 위생감을 겸임하였으며 의사면허증을 받았다. 1944년 귀향하여 제주읍 삼도리 향청(鄕廳) 안에 정화의원을 개업하여 불우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진료하는 인술을 펼쳤다.
광복 직후 고수선(高守善)과 함께 여성 문맹 퇴치와 계몽 운동을 위한 대한부인회를 조직하였다. 1949년 신성여자중학교 설립을 인가받았으며, 1954년에 신성여자고등학교를 개교하여 초대 교장이 되어 무보수로 재임하면서 명문 여자고등학교로서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이후 대한적십자사 제주지사 부지사장, 제주도중등교육회 회장, 대한결핵협회 제주도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4년 도(道) 단위의 교육자치제가 실시되어 초대 제주도교육감에 피선되어 4년 동안 재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55년 로마교황 훈장, 1967년 제2회 5·16민족상 교육부문 본상을 수상하였고, 1993년 3·1절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그의 모든 유품은 제주교육박물관에 기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