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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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出版 |
영어음역 | Chulpan |
영어의미역 | book publishing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문교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판매·배포의 목적으로 간행된 문서나 사진·회화 등의 저작물.
[개설]
저작자나 출판사가 지식이나 정보·사상·감정·문화 등의 정신적 내용을 문자나 도형 등으로 기호화하고 처리해서 그 메시지를 도서 또는 서적이라는 인쇄 매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 전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독자들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그 대가로 이윤을 추구하는 문화적, 경제적 커뮤니케이션 행위인 것이다.
[기능]
과거에는 대체로 출판을 도서나 서적을 인쇄하여 배포하는 일로만 여겼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에는 출판이 서적의 복제 기능에 치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복제 기술이 발달하고 문맹자가 줄어 도서나 서적의 수요량이 늘어남에 따라 저작자와 독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점차 증대됐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출판을 저작자와 독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으로 보고 있다. 도서나 서적이 현대에서는 대중 매체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판은 서적을 매체로 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이다.
출판물인 도서나 서적은 여러 가지 특성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출판 커뮤니케이션의 매체인 서적은 생명력이 길고 도달 범위도 넓다. 특히 복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저작자의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서적은 계속 회람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므로 대중성도 지니고 있다. 출판은 특히 지식의 보급과 새로운 사상의 확산, 문화 유산의 전수 기능을 담당한다.
또한 서적은 내용상 완벽성과 상세성을 지니고 있다. 서적은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에 출판은 다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학교 교육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한편 서적은 장편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연극·영화·방송 프로그램 등을 문자로 재창작해서 소개할 수도 있어 문화의 창조와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밖에도 서적은 다른 매체들에 비해 권위가 있고 신뢰성과 친근감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또한 출판은 여러 관련 산업을 발전시킨다. 출판이 기계적, 또는 화학적 방법으로 책을 만들기 때문에 이공 계통의 산업을 발전시킨다. 또한 문서나 그 밖의 기록을 만들기 때문에 문화 발전, 나아가서는 사회 발전에 따라 저술이 촉진되고 있다. 그리고 판매 또는 배송을 통하여 관련 산업 발전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변천]
1. 고려·조선시대의 출판
제주 출판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에 따르면 1296년(충렬왕 22) 제주 묘련사(妙蓮寺)에서 『금광명경문구소(金光明経文句䟽)』를 중조(重彫)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제주 지역에서 간행된 문헌 자료들에는 지역민의 교육을 위한 경서류와 통치를 위한 법률 관계 서적류 등이 있다. 또한 제주에서 간행한 서적의 목록을 수록한 책판 목록과 6종의 읍지가 있고, 70여 종의 전적류 가운데 17종은 제주에서 간행된 것이다.
주요 출판물을 보면 1418년(태종 18) 3월 제주목에서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을 계미자(癸未子)로 간행했고, 1705년(숙종 31)에 제주목사 송정규(宋廷奎)가 수정, 보완했다. 또 1439년(세종 21) 2월에 죽은 사람의 검안 양식인 『검시상식(檢屍狀式)』을 제주안무사가 간판모인(刊板模印)하여 제주에 반포했다.
1482년(성종 13) 2월에 양성지(梁誠之)가 저술한 『제주삼읍도(濟州三邑圖)』를 비롯하여 중요한 서적들을 모두 관에서 거두어들여 홍문관에 비장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조 때에는 『신편집성마의방(新編集成馬医方)』, 『신편우의방(新編牛医方)』,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 『성리대전서(性理大全書)』가 제주 지역에서 간행되었다.
1653년(효종 4)에 간행된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耽羅志)』에는 제주향교에 ‘책판고’가 있다고 밝혀져 있고, ‘책판고’에 소장된 책의 목록을 기록해 놓았다. 이 『탐라지』는 제주읍지이다.
이밖에 제주읍지로 허목(許穆)의 『탐라지』, 이형상(李衡祥)의 『남환박물(南宦博物)』 등이 있고, 정조 때에는 『제주읍지』, 『제주대정·정의군읍지』가 편찬되었고, 고종 때도 『제주읍지』, 『대정군읍지』, 『정의군읍지』가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제주의 출판물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여 전수·조사된 적이 없고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 현황 파악이 어렵다.
단지 1983년 문화재관리국과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가 공동 조사한 『제주도전적종합조사보고』와 탐라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인『탐라문화』에 발표된 일부 논문에서 조선시대 출판물을 부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도지』에 게재되는 언론, 출판 분야 논고에 일부가 소개될 뿐이다. 그나마 『규장각도서목록』에 제주 관련 출판 목록이 포함된 것은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2. 일제강점기의 출판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출판인들이 제주에 들어와 인쇄 사업을 시작했다. 1911년 일본인 사원승미[四元勝美]가 제주읍 본정통(현 제주시 관덕로)에 사원인쇄소(四元印刷所)를 개업하고, 제주 출신 강성언(姜成彦), 이국빈(李國彬), 김용균(金容均), 백찬석(白燦錫) 등을 사원으로 채용했다. 이들은 사원인쇄소에서 인쇄 기술을 익히면서 제주 출판인으로 성장했다.
제주 출신으로는 양창준(梁昌俊)이 1924년 11월 보창인쇄소를 설립했고, 이듬해인 1925년 1월 한창소(韓昌顥)가 제주읍 삼도리 68번지에서 대성인쇄소를 개업한 데 이어 1926년 4월 임기호(任基鎬)가 임기호활판인쇄소를 개업했다.
이 시기에 일본인이 개업한 오카모토[岡本] 인쇄소에서도 제주 지역 출신들을 고용하여 영업했다. 1935년에 이르러 박이혁(朴離爀)과 김근시(金根時)가 제주읍 본정동에 삼광인쇄소를 개업했는데, 이후에 백찬석(白燦錫)이 인수하여 광문사로 개칭했다.
또한 일본에서 인쇄 기술을 배우고 귀국한 서덕권(徐德權)은 사원인쇄소에 입사했다가 이후 동흥인쇄사를 경영했다.
제주에서 최초로 설립된 사원인쇄소는 규모도 컸는데, 1937년에 이르러 전 직원이 제주 출신으로 운영되었다. 사원인쇄소 직원이었던 강성언은 1940년 11월 강본인쇄소(현 제주시 서문로)를 인수하여 운영했고, 김창보(전 『제주신보』 공무국장)는 삼훈인쇄소를 경영했다.
일제강점기에 제주의 인쇄소에서 출판된 서적은 거의 없었고, 관공서의 소식지나 전단지 등을 주로 인쇄했다.
3. 현대의 출판
광복 직후 강본인쇄소(대표 강성언)는 제주인쇄공업사로 상호를 변경하고 사옥을 제주읍 칠성로로 이전했다. 1947년에는 의사 문종혁(文鍾赫)이 제주읍 삼도리에 활문사(活文社)를 설립하고 공판기(孔版機)까지 갖추었다.
이듬해인 1948년에는 김종현(金宗鉉), 박황엽(朴湟燁), 박황옥(朴湟玉), 고경수(高瓊洙) 등 네 명이 공동으로 제주읍 관덕정 인근에 문화인쇄소를 설립했다. 1950년에는 고봉생(高鳳生), 박황옥(朴湟玉), 김석주(金錫柱), 문종삼(文鍾三) 등 네 명이 공동으로 중앙로터리 인근에 중앙인쇄소를 설립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 모슬포에 육군 제2훈련소가 설치되면서 제주 지역 인쇄업계는 군용 인쇄물 작업으로 호황을 누렸다. 1954년 제주신보사가 인쇄부를 분리하여 인쇄업계에 참여하면서 같은 해 11월 제주도 인쇄공업조합이 결성되고 인쇄 협정 요금제를 채택했다.
1969년 4·19혁명으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환경에서 새로 설립된 제주매일신문사는 최초로 동판 시설을 갖추었고, 1963년에는 제주도 인쇄공업조합이 12개 인쇄사를 회원으로 하여 중앙회에 가입했다.
제주 지역 인쇄 공업은 이때부터 점차 시설의 현대화에 힘을 기울였다. 1969년에는 대동원색인쇄사(대표 양창은)에서 옵셋인쇄기(수동)를 도입하여 처음으로 인쇄물 표지를 제주 지역에서 인쇄하기 시작했고, 1985년에는 태화인쇄사(대표 박서동)에서 일본산 원색 자동 인쇄기를 도입하여 본격적인 컬러 인쇄를 시작했다.
1996년에 들어 제주 지역의 인쇄 출판계는 시설을 개선하여 자동 인쇄 체제를 갖추었다. 컬러 인쇄도 원색 인쇄기에서 4색 원색 인쇄기로 개선되고 대형 인쇄물이 개발되면서 2절 4색 자동 인쇄기가 도입되었다.
제주 지역 인쇄 시설이 개선되자 다른 지방에서 인쇄하던 고급 인쇄물이나 개인 출판물도 대부분 제주도 내에서 인쇄가 가능하게 되었다.
[현황]
현재 제주시의 인쇄사는 171곳이고, 출판사는 124곳이 등록되어 있다. 대부분 출판사는 인쇄사를 겸영하고 있다. 출판사들은 지방자치단체, 교육 기관 등 공공기관과 사회단체의 출판물을 수주받아 운영하고 있고, 일부 출판사는 기획 출판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제주시 목석원출판부(대표 백운철)는 무료로 제주 지역의 사진 작가들의 사진집을 내주거나 돈 없는 작가들의 저서 출판을 지원하고 있다. 목석원출판부가 지원, 출판한 저작물은 『변시지 제주 풍화집』(글 송상일)을 시작으로, 『제주해녀』(김영돈 글, 서재철 사진), 『제주 동자석 사진집』(이문교), 『제주 사람들의 삶』1·2 (홍정표), 『제주문화론』(현길언), 『나비로의 환생』(오성찬) 등 30여 권이다.
경신인쇄사가 운영하는 제주문화사(대표 홍성호)는 제주 문화에 관한 기획물을 시리즈로 출판하여 학문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제주문화사는 ‘제주문화 총서’를 기획하여 보급하고 있는데, 『탐라사료집록(耽羅史料集錄)』1·2 (고찬화)를 비롯하여 『고려사제주록(高麗史濟州錄)』(동아대학교), 『제주도민요해설』(홍성표), 『제주유배문학연구』(양순필), 『조선왕조실록 중 제주기록 1~10』, 『영주풍아(瀛洲風雅)』(오문복), 『제주감귤문헌목록』(이문교) 등 40여 권을 발행했다.
특히 제주 지역에서 발행한 『제주도』의 창간호부터 76호까지의 영인본을 발행하여 멸실 위기에 있는 제주도 관련 자료를 보존시키는 데 공헌했다.
도서출판 각(대표: 박경훈)은 신축항쟁과 4·3사건 등에 관한 자료를 비롯하여 이와 관련된 책들을 연속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1901년에 일어난 신축항쟁과 관련해 간행한 책은 『진실과 화해』, 『신축 제주항쟁 자료집』 등이 있다.
또 제주4·3연구소의 『제주4·3유적』, 시집인 『고운 아이 다 죽고』(김경훈) 외에 『한라산 오르듯이』(현용준) 등 60여 권의 책을 냈다.
도서출판 반석은 1985년 이후 계속 ‘제주의 마을’ 시리즈를 기획하여 2002년까지 모두 17개 마을을 정리하여 합본으로 출판했다.
2001년 9월에는 제주대학교 언론출판센터가 설립되어 『제대신문』, 『영자신문』을 발행하고 교육방송국을 운영하면서 교수들이 저술한 전문서를 출판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언론출판센터는 『제주 지역 주민운동론』(부만근), 『변방인의 세계』(김영화), 『제주의 새』(박행신), 『제주도 주민의 정체성』(김항원), 『현대 프랑스 정치론』(장원석) 등 짧은 기간에 110여 권을 출판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출판물은 제주도 인쇄공업협동조합을 통해 발주되고 있다. 제주도 인쇄공업협동조합은 1954년 11월 10일 제주도 인쇄공업협동조합으로 출범하여 1963년 10월에 중앙회에 가입하면서 협동조합 체제로 재정비되었다. 2000년에는 조합 명칭을 제주도 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으로 변경하고, 2003년 11월에는 제주시 이도2동에 조합 청사를 준공했다.
회원은 창립 당시 6개사에서 1963년 12개사, 1980년 28개사, 1991년 39개사, 2006년 83개 회원사로 조직되어 있다. 조합에서는 협정 요금을 준수하고 출판 문화 향상에 노력하며, 회원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역대 이사장은 강성언(1~6대), 현희형(7~8대), 문종원(9~12대), 홍성호(13대), 이기백(14대), 장태호(15대), 양창은(16대), 백종식(17~18대)이고, 2006년 현재 강규진(선진인쇄사 대표)이 이사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