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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마을 동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057
한자 新亭-洞祭
영어음역 Sinjeong Maeul Dongje
영어의미역 Sinjeong Village Tutelary Festival
이칭/별칭 신정마을 충제,신정마을 산신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거룡리 신정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
의례시기/일시 음력 6월 1일 23시
의례장소 신정마을 회관 옥상에 있는 제단
제관 마을사람

[정의]

전라남도 의신면 거룡리 신정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모시는 제사.

[개설]

신정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6월 초하루 밤 11시에 마을제사를 모시는데, 이를 충제라고 부른다. 충제는 농약이 발달하기 이전에 병충해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염원에서 마을 뒷산에 마련한 제터에 제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됐다. 산에서 제를 지낸다고 해서 산신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변천]

충제는 원래 마을 뒷산의 제터에서 모셨으나 3년 전부터 마을회관 옥상으로 옮기고 그곳에 상석을 마련하여 제를 모시고 있다. 날짜 또한 변경하고 제의 절차를 간소화하였는데, 6월 초하루 아침 9시에 입산하여 밤 11시에 제를 지내고 다음날 아침에 내려오던 것을, 지금은 당일 회관에 모여서 저녁에 제를 지내고 바로 귀가하는 것으로 간소화하였다.

[제관의 선정 및 역할]

충제를 진행하는 사람들을 마을주민들은 제관이라고 부른다. 이 제관은 일주일 전에 마을의 지관이 생기복덕을 가려서 제관 두 명과 심부름꾼 한 명을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들은 궂은 곳을 출입하지 않고 음식을 가려 먹으며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경건하게 유지해야 한다.

[절차]

제관들은 아침 8시경이 되면 마을회관에 모여서 저녁이 될 때까지 제시를 기다린다. 그러다 밤 11시쯤 깨끗한 차림으로 제물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 뒤 마련된 상석에 제물을 진설한다. 진설이 끝나면 절을 한 번 올리고 술을 한 잔 올린다. 그리고 다시 절을 한 번 더 한 후 축을 읊는다. 축을 다 읽은 후에 음복을 하고 헌식을 한다. 헌식은 닭머리를 잘라서 마을에서 북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묻는다.

[제물/용품/제구]

제물장만은 이장과 심부름꾼이 하며, 진도 매일시장이나 마트에 나가서 사온다. 제물은 비교적 간소하기 때문에 물목기를 따로 작성하지 않는다.

제물로는 오이, 생닭, 생쌀을 준비하는데 모두 생식으로 준비하는 것이 신정마을만의 특이점이다. 제물이 간소하고 생식으로 올리다 보니 미리 장을 보고 보관하기가 까다로워, 예전에는 장을 보지 않고 깨끗한 집에서 모두 준비하기도 했다.

충제를 올릴 때 제주는 소주를 사용하며, 제기는 매년 구입하지 않고 회관에 비치된 접시를 사용한다. 제물을 구입할 때 제관들에게 줄 담배와 속옷, 양말, 옷 한 벌을 함께 구입하여 증여한다. 그리고 다른 음식도 넉넉히 마련하여 이튿날 마을잔치를 준비한다.

[부대행사]

충제를 지내기 하루 전날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여 마을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며, 마을회관과 상석은 당일에 제관들이 청소한다. 제관들은 상석을 깨끗하게 닦고 옥상에 차일을 쳐서 하늘이 보이지 않게 한다. 이렇게 옥상에 차일을 치는 이유는 과거 산에서 제를 모실 때에는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충제는 매우 엄숙하게 진행되므로 충제를 모시는 당일에는 제관 이외의 사람은 함부로 마을회관에 근접할 수 없다. 이 금기는 마을주민들 모두가 알아서 지키기 때문에 금줄을 치거나 황토를 놓지는 않는다.

과거에 신정마을에서는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편을 갈라서 줄다리기를 했으나 50여 년 전부터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금기]

충제를 모시는 당일에는 제터가 마련된 마을회관의 출입이 금지된다. 이 금기는 마을주민들 모두가 알아서 지키기 때문에 금줄을 치거나 황토를 놓지는 않는다.

충제를 지내는 날은 마을주민들 모두가 들에 나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날은 하루 일을 쉬면서 한해 풍년이 들기를 기도하는데, 충제를 매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지내기 때문에 풍물 등으로 소란을 피우지 않아야 한다.

[축문]

축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維歲次

六月朔 初一日 幼學獻官 敢昭告于 后土山神 守護天龍 呵噤朔세 癘役勿侵 灾害병除

降瑞生佯 保安人民 六畜番息 百虫消滅 雨水時中 年穀豊登 謹感酒饌 虔禱如期 庶感誠敬

欽栽 尙饗

[제비]

과거 신정마을에는 마을소유의 전답이 있어서 이 전답을 통해 충제비용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마을 논이 도로부지로 들어가자 정부보상금으로 마을기금을 마련한 뒤 충제에 필요한 비용은 마을에 초상이 나면 천돈을 받아 마련하고 있다.

충제를 지내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약 20만 원 가량인데, 제물을 준비하는 비용보다는 제관들에게 수고한다는 의미로 마련해 주는 옷을 구입하는데 대부분의 비용이 사용된다. 마을의 기금 및 충제에 관한 제비는 이장이 관리한다.

충제에 관한 결산은 12월 마을총회에서 이루어진다. 마을총회에서는 충제에 관한 결산뿐만 아니라 한 해의 모든 결산이 이루어지며, 다음 해의 계획도 수립하게 된다.

[현황]

신정마을 주민들은 농약이 발달하기 이전부터 충제에 대한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가뭄이 들어도 다른 마을에 비해 비교적 풍작이 좋은 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간혹 정성을 다해 충제를 지냈는데도 유독 병충해가 많은 해에는 충제를 한 번 더 지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영험함을 지닌 충제를 지낼 때에는 특히 제관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그 영험함이 발휘되고 마을에 우환이 없다고 믿는다. 한번은 제관이 피부병에 걸린지 모르고 제를 모셨다가 마을 전체에 피부병이 전염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해에는 7월 초에 충제를 다시 모셨는데 그제야 괜찮아졌다고 한다.

농약보급이 활성화된 이후 충제를 모시지 않았다가 마을 청년들이 죽어나갔다는 이웃마을 이야기가 오래도록 신정마을 주민들의 구전에 오르내리는 것은 충제가 단순히 병충해를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능적인 제가 아닌, 마을의 안녕까지 함께 지켜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제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모두 입을 모아 말할 정도로 신정마을 사람들은 충제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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