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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257
한자 鳳凰里
영어공식명칭 Bonghw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정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상서초동면 봉황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8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상서초동면 봉황리에서 경상남도 밀양군 초동면 봉황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초동면 봉황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가구수 207가구
인구[남/여] 358명[남 168명|여 190명]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봉황리(鳳凰里)밀양시 초동면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 무안면 마흘리·정곡리, 동쪽으로 부북면 전사포리·후사포리상남면 남산리, 남쪽으로 덕산리, 서쪽으로 무안면 연상리·무안리와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 봉대(鳳臺)[저대], 황대(黃垈, 凰垈), 방동[방하], 와지(臥旨), 새각단, 바깥지대, 제비골, 새실 등이 있다.

[명칭 유래]

봉황리는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봉대’와 ‘황대’를 합치면서 ‘봉황’이 되었다고 한다. 또 『밀양지명고』에 따르면 마을에서 보면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봉황이 활개를 치는 것 같다고 하여 만들어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자연 마을 중 봉대는 과거에 닥나무가 많아 ‘저대(楮垈)’라고 불렀으며, 방동은 과거에 ‘방하동’으로 불렀다고 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상서초동면 소속으로 ‘황대리(黃垈里)’, ‘저대리(楮垈里)’, ‘와지리(臥旨里)’, ‘방하동(方下洞)’이 적혀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 밀양부 상서초동면(上西初同面)에 속하였다. 1910년 5월 21일 상서초동면 봉대리(鳳臺里)와 황대리(黃垈里)가 병합되어 밀양군 상서초동면 봉황리가 되었으며, 방하동과 봉계리(鳳溪里)가 와지리에 병합되었다. 1914년 봉황리에 와지리가 병합되어 경상남도 밀양군 상서초동면 봉황리로 개설되었다. 1918년 상서초동면이 초동면으로 개칭되면서 밀양군 초동면 봉황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봉황리는 남쪽을 제외하고 우령산[596.5m], 종남산[662.6m], 방동고개 등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우령산 북서쪽 산지에서 초동천이 발원하고, 주변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을 합류하여 중앙부를 남류한다. 대체로 산지가 발달하나, 초동천이 흐르는 남부 지역에 저평지가 나타난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207세대, 358명[남자 168명, 여자 19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산지로 둘러싸여 큰 도로는 없으나 신연로를 따라 남쪽의 초동면 지역과 서쪽의 무안면으로 통한다. 초동천 본류와 지류를 따라 지대저수지, 봉황저수지, 와지저수지, 연곡소류지 등 크고 작은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주요 문화재로 청동기시대 고인돌이 나타나며,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인물로 종4품 선략장군이었던 밀양 손유호 묘(密陽孫攸好墓)[경상남도 기념물]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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