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61
한자 密陽 鵲院關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작원관지길 95[검세리 110]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윤여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3년 7월 20일연표보기 - 작원관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3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02년 - 밀양 작원관지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로 잔도 파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6년 - 밀양 작원관지 대홍수로 한남문 유실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9년 - 밀양 작원관지 한남문 자리에 비석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5년 - 작원관 복원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8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작원관지에서 밀양 작원관지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밀양 작원관지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소재지 밀양 작원관지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작원관지길 95[검세리 110]지도보기
성격 건물터
소유자 경상남도 밀양시
관리자 경상남도 밀양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3호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에 있는 고려시대 건물터.

[개설]

작원관(鵲院關)은 역원으로서 여행하는 관원들의 숙박소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외적을 경비하고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자 작원진이라는 나루터로 출입하는 사람과 화물을 검문하는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어 이른바 원(院)·관(關)·진(津)의 역할을 겸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밀양 작원관지(密陽鵲院關址)는 1983년 7월 20일 작원관지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73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12월 20일 밀양 작원관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변천]

밀양 작원관지는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교통·국방상의 관방지로서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요새지로 이용되었거나 왜구 침입의 방어 진지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 전기에 작원은 잔도(棧道) 에서 5~6리쯤 북쪽 지점에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구조와 규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밀양부사인 박진(朴晉)이 작원관에서 일본군을 맞이하여 항전했지만 함락되면서 소실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때 역원을 다시 세우고 관문과 잔도를 수리하였으며, 작원의 나루터 정비도 시작하였다. 그리고 고을 사람들이 원우를 새로 짓고 한남문(捍南門)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1902년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를 하면서 잔도가 파괴되었고 1936년 대홍수로 한남문이 유실되어 관문의 유적이 없어졌다. 1939년 경상남도 밀양군에서 한남문이 있었던 자리에 비석을 건립하여 유지되다가, 1995년 원래 위치에서 조금 이동한 현 위치에 작원관을 복원하였다.

[위치]

밀양 작원관지삼랑진읍 검세리에 있다. 작원관지는 밀양의 동남쪽 관구(關口)로서 양산과의 경계이며 서울로 북상하는 교통 및 국방상의 요해지다. 또한 낙동강 본류와 응천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를 바라보는 수로로서 동서의 요충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현황]

밀양 작원관지에는 한남문과 공운루(拱雲樓)가 복원되어 있고, 작원관원문기지비(鵲院關院門基址碑), 작원대교비(鵲院大橋碑), 작원진석교비(鵲院津石橋碑)가 있다. 또한 임진왜란 전적지를 기념하기 위한 작원관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밀양 작원관지는 교통과 방어의 요충지로서 경상남도 밀양의 지리성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전투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 유물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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