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2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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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茂山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율동3길 30-6[율동리 62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강진 |
건립 시기/일시 | 1940년 - 무산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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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무산재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율동3길 30-6[율동리 621] |
성격 | 재실 |
양식 | 목조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충주지씨 밀양문중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율동리에 있는 충주지씨 입향조를 추모하기 위한 일제강점기 재실.
[개설]
무산재(茂山齋)는 충주지씨 참의공파 후손 지이진(池二晉)[1887~1952]이 입향조 지준(池浚)[초명 지준정(池峻正), 1442~1489]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율동리 무곡[무실]에 건립한 재실이다.
처사(處士) 지준은 시조 지경(池鏡)의 32세손이고, 참의공파 파조 지윤원(池允源)의 12세손이며, 병자호란 때 순국한 충성군(忠城君) 표곡(豹谷) 지계최(池繼崔)[1593~1636]의 6세손이다. 호남에서 밀양으로 이거하여 삼랑진 자산(玆山)에 묻혔다. 지씨 후손들은 대대로 삼랑진 송지리 내송과 율동리 무실에 세거하였다. 1878년 지근연[1839~1905]이 친척들과 협의하여 재실을 짓기로 한 뒤 비서원승을 지낸 넷째 아들 죽강(竹岡) 지익일(池益一)[1869~1907]이 제전을 마련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940년 지이진은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삿갓봉 아래에 치제를 위한 재실을 준공하였다. 재실 이름은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뒷산 무산(茂山)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작은 건물 한 채를 재실 동쪽에 함께 지어 오우헌(五友軒)이라 명명하였다. 아버지의 다섯 형제가 우애롭게 지낸 의미를 담았다.
현재 재실 내벽에는 문암(文巖) 손후익(孫厚翼)[1888~1953]의 「무산재기」[1940], 의정부찬정 겸 장례원경 겸 전 시강원첨사 이재현(李載現)의 「무산재 상량문」[1941]과 ‘모선정(慕先亭)’ 현판, 장례원소경 겸 전 규장각부제학 이병관(李炳觀)의 「무산재기」[1941], 장례원경 이병관의 ‘오우헌’ 현판, 지이진의 「오우헌기」[1941]가 걸려 있다. 관련 사적으로 재실 앞쪽에 죽강 지익일 유적비[1907]와 중추원의관을 지낸 지창규(池昌奎) 기적비[1936]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위치]
무산재는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율동리 621번지에 있다. 율동리 무곡마을회관에서 마을 안쪽을 지나 삿갓봉을 향하여 300m쯤 위쪽으로 올라가면 산기슭에 재실이 있다.
[변천]
무산재는 1940년 창건 당시 무산재와 오우헌이 ‘ㄱ’ 자 형태로 배치되었으나, 현재 오우헌은 멸실된 상태이고 편액은 무산재 내벽에 걸려 있다.
[형태]
무산재는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무산재가 있는 밀양시 삼랑진읍 율동리는 충주지씨의 집성촌이었으나 현재 지씨는 한 가구도 남아 있지 않다. 재실 관리인마저 사망하여 건물은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