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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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茂山縣 |
영어공식명칭 | Musan-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설천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박노석 |
폐지 시기/일시 | 757년 - 무산현에서 무풍현으로 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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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무산현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
관할 지역 | 무산현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
[정의]
신라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 설천면 일부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현재의 무주 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각기 영유하던 지역이다. 즉 적천현(赤川縣)[주계현(朱溪縣)]은 마한에서 백제로 이어진 지역이고, 무산현(茂山縣)[무풍현(茂豊縣)]은 진한에서 신라로 이어진 지역이다. 무산현 지역은 본래 감문국(甘文國)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에서 점령한 뒤에 무산현으로 편제하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무풍현, 본디 무산현이다.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 이를 그대로 쓰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무풍현은 본래 신라의 무산현이었는데, 신라 경덕왕이 무풍(戊豊)으로 고쳐서 개령군(開寧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 초에 진례현(進禮縣)의 임내(任內)로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무풍현조에는 “무풍현은 본래 신라의 무산현이었다. 경덕왕이 무풍을 고쳐 개령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 초에는 진례현에 예속시키었다가 명종(明宗) 6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적조에는 “고무풍(古茂豐) 지금의 치소(治所) 동쪽 60리에 있다. 옛 성이 있고 석축으로 되었는데, 그 둘레는 531자이고 높이는 5자이며, 군창(軍倉)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 방면조에는 “풍동(豐東) 동쪽으로 처음이 60리이고, 끝이 80리이다. 풍남(豐南) 남쪽으로 처음이 40리이고. 끝이 60리이다. 풍서(豐西) 동쪽으로 처음이 40리이고, 끝이 50리이다. 위에 적은 세 면은 무풍(茂豐)의 옛날 현이다”라고 되어 있다.
[내용]
무풍현의 영역은 조선 시대의 풍동·풍남·풍서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현재의 무주군 무풍면과 설천면 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변천]
무산현 일대는 신라에 통합되기 이전에는 감문국에 속하였으나, 231년(조분왕 20) 석우로에 의해 감문국이 신라에 병합된 후 무산으로 이름 지어졌다. 이후 550년(진흥왕 11)에 청주의 무산현으로, 661년(문무왕 1)에 감문군의 무산현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757년 통일 신라 경덕왕 때에, 무풍으로 이름이 바뀌어 개령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에도 무풍현으로 진례현의 임내가 되었다. 1176년(명종 6)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1177년(명종 7)에 무풍과 주계의 겸 감무(兼監務)를 두었고, 1391년(공양왕 3)[『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공양왕 3년 신미로 되어 있는데, 신미년은 공양왕 4년인 1392년이다]에 무풍 감무라고 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무풍과 주계를 합하여 무주현으로 고치고, 치소를 주계현이 있던 곳에 두었다.
[의의와 평가]
전통 시대 무주군의 행정 구역의 변천 과정을 알려 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