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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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禮宮- |
영어공식명칭 | Myeongryegung |
이칭/별칭 | 명례궁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상하길 5[현내리 259-8]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유철 |
건립 시기/일시 | 1890년 - 명례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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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8년 - 명례궁 터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소재지 | 명례궁 터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상하길 5[현내리 259-8] |
성격 | 궁터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개항기 별궁 터.
[변천]
명례궁(明禮宮)은 조선 후기 궁내 대신 민병석(閔丙奭)이 건립한 행궁으로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한 별궁이다. 민병석은 무풍 지역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땅이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인 난세(亂世)의 피난지로 여기고 이곳에 99칸의 건물을 지었다. 당시 건립비는 무주부(茂朱府)의 공물(貢物)을 대납한 데서 나온 이익금이어서 명례궁은 결국 무주 백성의 세금으로 건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병석은 1890년(고종 27)에 공사에 착공하여 당시 무주 부사 서완순(徐完淳)의 협력을 받아 준공하였고, 토지 300두락(斗落)을 부속시키고 후에 쌀 1,500석(石)을 비축한 다음 명성 황후(明成皇后) 민비(閔妃)에게 상납하였다.
명성 황후는 초대 관감(初代官監)에 구모 승지(具某承旨)를 임명하였고, 2대는 민병형(閔丙馨), 3대는 구일모(具日模)가 부임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일본의 낭인들에게 명성 황후가 시해당하는 등 구한말의 위기감이 절정에 이르렀고, 마침내 1905년(고종 42)에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면서 무풍 지역의 명례궁은 다시 민병석의 개인 소유가 되었다. 이후 무풍 지역에 거주하는 하인환(河寅煥)이 10여 년간 관리하였다가 이장우(李章雨)에게 매각하였다고 한다. 8·15 광복 후에 토지(土地)는 금융 조회(金融組會)의 소유가 되었고, 건물은 강순열(姜順烈)의 소유가 되었다. 아울러 건축 목재 일부는 대덕산(大德山) 정각(亭閣)으로, 일부는 양산면(楊山面) 지서(支署) 건물로 팔려 갔고, 일부는 헐렸다.
[위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소재지의 무풍 파출소에서 동쪽으로 길을 따라 100여 m 지점 좌측에 대덕산 장터라는 시장이 있다. 명례궁 터는 대덕산 장터[무풍 시장]의 북쪽 뒤편에 자리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8년에 전주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무주 지방 문화재 지표 조사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궁궐 터는 확인하였으나 그 밖의 궁궐 건물은 확인할 수 없었다. 문화재 지표 조사 이외에 발굴 조사는 추진된 바 없다.
[현황]
현재 명례궁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명례궁 터로 추정되는 대부분의 지역은 민가로 조성되어 있으며, 일부 지역은 감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밭 주변에서는 정원석으로 추정되는 석재와 거칠게 다듬어진 석재도 일부 확인된다. 주변 도로명도 명례궁길로 명명되어 있다. 명례궁은 개항기의 별궁이었으나 현존하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