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21 |
---|---|
한자 | 所川里密陽朴氏孝烈閣 |
영어공식명칭 | Miryang Bakssi Hyoyeolgak in Socheon-ri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1003-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범호 |
현 소재지 | 소천리 밀양박씨 효열각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1003-2 |
---|---|
성격 | 정려각 |
양식 | 홑처마 맞배 지붕 |
정면 칸수 | 2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밀양박씨 문중 |
관리자 | 밀양박씨 문중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개항기 밀양박씨의 효열각.
[개설]
밀양박씨(密陽朴氏) 문중의 효자와 열녀를 연정(聯旌)한 것으로 박권(朴權)[1747~1822]과 박삼(朴森)[1762~1832] 형제의 효행과 박경호(朴景鎬)의 처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열행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효자 박권의 본관은 밀양이며, 자는 맹중(孟仲), 호는 운곡(雲谷)이다.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1786년(정조 10)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성품이 어버이에게는 효성을 다하고 형제간에는 우애하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박권은 언제나 부모의 건강을 염려하였고, 병중에는 손수 약을 맛보고 음식을 살피는 데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마침내 상을 당한 뒤에는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셋째 동생 박삼과 함께 여막(廬幕)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하여 전(奠)을 올리면서 매일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건강을 살폈다. 모친상을 당해 슬퍼함이 너무도 애절하였으며, 예제(禮祭)는 부친의 상 때와 같았다. 부친의 상 때 삼년상을 치른 것처럼 모친상에도 같이 하여 두 차례에 걸쳐 6년간 시묘를 산 효자였다. 1831년(순조 31)에 조정에서 ‘효자 성균진사 증사복시정 밀양 박권지려(孝子成均進士贈司僕寺正密陽朴權之閭)’로 동생과 함께 형제에게 정려를 내렸다. 아울러 형 박권은 사복시정(司僕寺正), 동생 박삼은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효자 박삼의 자는 여삼(汝三), 호는 운촌(雲村)으로 효자 박권의 셋째 동생이다. 박삼은 천성이 효성스럽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어 부모를 섬기는 데 극진하였다. 부모의 상중에는 형 박권과 함께 부모의 묘에서 3년씩 시묘를 살며 효행을 다하였다. 1891년(고종 28)에 조정에서 ‘효자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밀양 박삼지려(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密陽朴森之閭)’로 명정(命旌)되고, 그의 형 박권과 함께 정려를 내렸다.
열녀(烈女) 김해 김씨는 박경호(朴景鎬)의 처로 결혼 후 2년 만에 남편이 중병에 걸리게 되자, 하늘에 대신 죽기를 기도하면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입에 흘려 넣어 소생시켰다. 그런데 다음 해 남편이 다시 발병하여 결국 운명하자 빈소를 만들고 전을 올리며 예를 따라 극진하게 상을 치렀다. 남편과 사별 후 시가와 친가에서 멀리 떨어져 노비와 살면서 칠삭둥이 유복자를 낳았다. 그런데 살고 있는 집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였고, 그 후 밤마다 큰 호랑이가 찾아와 뜰 앞에 엎드려 있는 것이 가축과 같았다. 이에 김해 김씨는 노비에게 “저 짐승이 비록 맹수이지만, 밤에 왔다가 새벽에 돌아가는 것은 아주 기이한 일이다. 그러니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둑이 난입하다가 뜰에 누워 있는 호랑이를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며 자빠졌다. 이를 본 이웃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호랑이의 행동이 평범한 일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관아에 알려지게 되었고, 수령은 감탄하면서 포상할 뿐 아니라 노자까지 마련해 주었다. 이에 김해 김씨는 남편의 관을 싣고, 아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1891년에 ‘열녀 학생 밀양 박경호지처 부인 김해 김씨지려(烈女學生密陽朴景鎬之妻婦人金海金氏之閭)’로 명정되어 효자 박권·박삼 형제와 함께 정려가 내려졌다.
[위치]
소천리 밀양박씨 효열각(所川里密陽朴氏孝烈閣)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양지 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설천면 주민 자치 센터에서 설천 파출소 방향으로 400m 정도 이동하여 설천 중고등학교로 들어가는 입구의 국도변에 있다.
[변천]
1891년에 정려가 내려지고 정려각을 세운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정면 3칸[336㎝], 측면 1칸[190㎝]의 홑처마 맞배지붕 형태이다.
[현황]
밀양박씨 효열각은 정각 안에 박권과 박삼의 정려 현판이 두 개 있고, 그 옆에 김해 김씨의 정려비가 있다. 밀양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