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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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所川里李聖列永世不忘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로 968[삼공리 822-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범호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865년 - 이성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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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890년 12월 - 소천리 이성열 영세불망비 건립 |
현 소재지 | 소천리 이성열 영세불망비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로 968[삼공리 822-3] |
원소재지 | 소천리 이성열 영세불망비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
성격 | 공적비 |
양식 | 석비 |
관련 인물 | 이성열(李聖列)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90㎝[높이]|40㎝[너비]|10㎝[두께]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개항기 부사 이성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우국지사 이성열(李聖列)[1865~?]의 호는 퇴암(退庵)으로, 1888년(고종 25) 판관으로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홍문관 응교, 규장각 직각, 시강원 문학 등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으로 있을 때 직무상의 문제로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난 뒤 경상북도와 전라북도 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벼슬을 사직하고 여주에 은거하면서 민종식(閔宗植), 이시영(李始榮) 등과 협의하여 의병을 규합하였는데, 의병 명부가 압수되어 많은 동지들이 체포되자 몹시 비통해하다가 결국 단식 끝에 자결하였다.
[건립 경위]
소천리 이성열 영세불망비(所川里李聖列永世不忘碑)는 이성열이 무주 부사로 재임할 때 베푼 공덕을 기리기 위해 1890년(고종 27) 12월에 건립하였다.
[위치]
설천면 사무소에서 나제통문 삼거리까지 간 후 무설로로 우회전한 후 14㎞ 이동하면 우측에 덕유산 레저 바이크텔이 나온다. 이성열 영세불망비는 덕유산 레저 바이크텔 앞 정원에 있다. 본래는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었으나 언제 옮겨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형태]
높이 90㎝, 너비 40㎝, 두께 10㎝ 규모의 화강암 재질이다.
[금석문]
비문은 '행부사 이후 성열 영세불망비(行府使李候聖列永世不忘碑) 광서 십육년 경인 십이 월 일(光緖十六年 庚寅 十二月 日)'이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덕유산 레저 바이크텔 앞마당 정원에 삼공리 박일표 불망비와 나란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