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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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瓚均 |
영어공식명칭 | Sin Changy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정민 |
출생 시기/일시 | 1937년 10월 22일 - 신찬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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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60년 - 신찬균 합동 통신 문화부 기자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66년 - 신찬균 경향 신문 한국 정경 연구소 편찬실 차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69년 - 신찬균 합동 통신사 문화부 기자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73년 - 신찬균 문화 공보부 문화재 전문 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76년 - 신찬균 합동 통신사 문화 부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78년 - 신찬균 동국 대학교 대학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 신찬균 전국 민속 경연 대회 심사 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81년 - 신찬균 연합 통신 문화 부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85년 - 신찬균 경희대학교 박사 과정 수료, 문학 박사 학위 수여 |
활동 시기/일시 | 1987년 - 신찬균 수석 논설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88년 - 신찬균 문화재 보호 협회 이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91년 - 신찬균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1년 - 신찬균 전라북도 애향 대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1년 - 신찬균 국무총리 표창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2년 - 신찬균 국민 일보 이사 겸 논설위원, 편집 국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94년 - 신찬균 세계 일보 논설 고문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95년 - 신찬균 제11회 언론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8년 - 신찬균 한국 신문 방송인 클럽 제2회 언론 대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8년~1999년 - 신찬균 한국 신문 방송인 클럽 부회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99년 - 신찬균 동국 대학교 겸임 교수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2000년 - 신찬균 제49회 서울시 문화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2001년 - 신찬균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대책반 자문 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2003년 - 신찬균 언론 중재 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2003년 - 신찬균 방송 위원회 보도 교양 심의 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2004년 - 신찬균 독립 기념관 감사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2006년 12월 2일 - 신찬균 사망 |
출생지 |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
성격 | 언론인|시인 |
성별 | 남 |
대표 관직|경력 | 한국 현대 시인 협회 이사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의 언론인 겸 시인.
[활동 사항]
신찬균(申瓚均)[1937~2006]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서 출생하였다. 1956년 전주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전주 고등학교 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당시 스승이었던 시인 신석정(辛夕汀)의 가르침을 통해 작가 정신과 언론인의 자세를 배웠다. 1961년 동국 대학교 국문과를 나와 경향 신문사 기자로 입사하였다. 이후 1978년 동국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1985년 경희 대학교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1960~1970년대 합동 통신 문화부에서 문화재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며 1971년 무령왕릉 발굴과 연이은 경주 지역 대형 고고학 발굴 현장을 취재하였다. 1966년 경향 신문 한국 정경 연구소 편찬실 차장으로 근무하다 1969년 합동 통신사로 자리를 옮기고 문화 부장[1976]을 지냈다. 또한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연합 통신 부국장, 편집부 국장, 출판 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수석 논설위원[1987], 논설위원 실장[1988년], 국민 일보 수석 논설위원[1989], 『국민 일보』 이사 겸 논설위원[1992], 『세계 일보』 논설 고문과 이사 주필[1994~1998], 한국 신문 방송인 클럽 부회장[1998~1999], 언론 중재 위원[2003] 등을 지냈다.
신찬균은 언론사에 근무하는 동안 문화 공보부 문화재 전문 위원[1973], 전국 민속 경연 대회 심사 위원[1980], 문화재 위원, ‘문화유산의 해’ 조직 위원 등 문화재와 관계된 활동도 활발하게 하였다. 또한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대책반 자문 위원[2001], 독립 기념관 감사[2004]를 지냈다. 1971년 『월간 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여 시작(詩作)에도 전념하였고, 이후 한국 현대 시인 협회 이사를 역임하였다. 부인은 정순영이며, 슬하에 1남 2녀가 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민속의 고향』[1978] 『아리랑 고개 나그네』[1984] 『한국 만가』[1990] 『성서의 기적』·『악마의 포식』·『아리랑 그 영원한 민족 언어』[2001]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어둠이 오는 江」[『사상계』17, 18, 사상계사, 1969], 「전통 문화의 계승 문제」[『신문 평론』41, 한국 언론 진흥 재단, 1972], 「만가의 배경적 연구」[『언어 연구』62, 63, 한국 어문 교육 연구회, 1989], 「만가의 한·중·일 비교 연구」[『비교 민속학』6, 비교 민속 학회, 1990] 등 언론, 민속 관련 논문이 다수 있다.
[상훈과 추모]
1991년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 및 국무총리 표창, 전라북도 애향 대상을 비롯하여 1995년 제11회 언론상, 1997년 문화 훈장, 1998년 한국 신문 방송인 클럽 제2회 언론 대상, 2000년 제49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