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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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弓垈-將軍廟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
집필자 | 김영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궁대마을과 장군 묘」,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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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장군 묘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마을 |
성격 | 설화|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나그네|조씨|정 장군 |
모티프 유형 | 명당|풍수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서 장군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궁대마을과 장군 묘」는 천하의 명당자리인 궁대마을이 옆 산의 장군 묘에서 나오는 강한 혈 때문에 쓸모없게 되었다는 풍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궁대마을과 장군 묘」는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전설집』의 46쪽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의 이야기로 정확한 채록 시기는 미상이다.
[내용]
조선 시대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마을은 십여 호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정답게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어느 날 한 나그네가 마을 형상을 살펴보고는 궁대마을이, “천하의 명당이 자리할 곳이지만 옆 산에서 내려오는 혈이 너무 강해서 명당이 쓸모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후 1년이 흘러 어느 날 옆 산 밑에 사는 조씨의 꿈에 며칠간 반복적으로 백발의 선인이 나타나 집을 비우라고 하였다. 조씨가 예사로운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예정한 날에 60명의 상두꾼이 멘 상여가 궁대마을 앞 재를 넘어 곧장 조씨의 집으로 왔고, 조씨는 곧바로 집을 비워 주었다. 조씨의 집터에 쓴 묘는 삼도 통제사 정 장군의 묘라 하여 사람들은 장군 묘라고 부르고 있다.
[모티프 분석]
「궁대마을과 장군 묘」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풍수’ 등이다. 장군 묘 전설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역시 명당 모티프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명당에 대한 열망은, 현재의 삶은 고달프지만 미래 혹은 후세대에는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는 가능성을 꿈꾸는 민중의 열망과 맞닿아 있다. 이런 열망에 의해 수많은 명당 설화들이 전국적으로 출현하게 된다. 「궁대마을과 장군 묘」는 명당 모티프를 차용하여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마을이 명당에서 빗겨 나간 연유를 보여 주고 있다. 즉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마을은 천하제일의 명당이지만 옆 산에서 내려오는 혈이 너무 강해 명당으로서의 위치를 잃게 되었는데, 옆 산의 혈이 얼마나 강한지는 기개 강한 장군 묘가 있음으로 증명하고 있다.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마을 지역민 입장에서는 옆 산에 있는 장군 묘가 마을로 내려오는 혈을 막아 궁대마을이 명당에서 빗겨 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의식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