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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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梧桐-龍-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오동마을 |
집필자 | 이정훈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오동마을 용바위」,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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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용바위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오동마을 |
성격 | 설화|암석 유래 전설|의례 생성담 |
주요 등장 인물 | 두 마리 용|마을 사람들 |
모티프 유형 | 이기고 지기|기우제|바위 기원|동기 감응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오동마을에서 용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오동마을 용바위」는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용소(龍沼)에서 승천하고자 싸우던 두 마리의 용이 바위가 되었다는 암석 유래 전설이다. 또한 민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기우제라고 하는 의례 생성담이기도 하다.
[채록/수집 상황]
「오동마을 용바위」는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전설집』의 90~91쪽에 수록되어 있다. 채록 상황에 대한 기록을 알 수 없다.
[내용]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오동마을에는 용바위가 있다. 원래 이 마을에는 깊이가 2m나 되는 용소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해 지독한 가뭄이 들어 물이 말라서 수심 속에 살던 두 마리 용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승천하려고 싸우다가 결국은 두 마리 다 바위가 되고 말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더 극심한 가뭄이 들자 마을 사람들이 용바위 앞에서 기우제를 지내며 비가 오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기우제를 다시 올리는 문제를 놓고 대립하였다. 마을 사람들의 대립이 심해져 서로 몸싸움까지 번져 피를 흘렸는데, 그때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낼 때 돼지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돼지 피를 용바위에 흘러내리게 하는 풍습이 생겼다. 지금도 깊은 용소 한가운데 두 마리의 용이 감아 올린 듯한 형상을 하고 솟아 있다. 용소 근처에는 벽오대(碧梧臺)에 벽오정(碧梧亭)이 있어서 용바위를 볼 수 있다.
[모티프 분석]
「오동마을 용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이기고 지기’, ‘기우제’, ‘바위 기원’, ‘동기 감응’ 등이다. 1989년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별책 부록 1에 실려 있는 「설화 유형 분류」 중의 ‘이기고 지기’에 속한다. 두 마리의 용이 이기고 지는 경쟁을 벌이는 것이나, 마을 사람들이 기우제의 여부를 놓고 대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뭄과 기우제에 관련된 설화는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그러나 「오동마을 용바위」는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오동마을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이야기다.
무주군 안성면은 ‘덕유산 국립 공원’에 속하면서도 농지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오동마을 용바위는 수심 2m나 되는 연못 속에서 살던 두 마리 용들이 변한 것으로, 바위의 모습이 두 마리의 용이 싸우는 형상으로 보여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 용바위는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오동마을 사람들의 기우제 대상이기도 하다. 마치 당산의 영험함처럼 용바위 앞에서 제물을 바치면 비가 내린다는 믿음이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무주군에서 농지의 비율이 가장 높은 안성면에서 기우제는 농사와 직결되는 민속이다. 또 두 용의 대립을 마을 사람들이 재현하면서 갈등이 해소된다는 점에서는 ‘동기 감응적 요소’도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