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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와 은혜의 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1208
한자 怨讐-恩惠-城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신두 마을
집필자 김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원수와 은혜의 성」, 『무주 군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원수와 은혜의 성」,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4년 - 「원수와 은혜의 성」, 『무주 군지』 중권에 수록
관련 지명 나제통문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신두 마을 지도보기
성격 설화|실패한 복수담|용서담
주요 등장 인물 비화|김유신|무열왕|진무|신라 병사
모티프 유형 복수|용서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신두 마을에서 나제통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원수와 은혜의 성」의자왕(義慈王)의 딸 비화가 신라 무열왕(武烈王)에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다가 그르친 실패한 복수담이며, 무열왕은 자신을 죽이려던 비화를 용서하여 나제통문(羅濟通門)까지 배웅해 준다는 용서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무주군에서 편찬한 『무주 군지』,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발행한 『내 고장 전설집』, 2004년 무주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간행한 『무주 군지』 중권 등에 「원수와 은혜의 성」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와 장소는 명확하지 않다.

[내용]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고구려, 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기세가 등등했던 무렵의 일이다. 나제통문 부근의 산성에 신라의 병사들이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말을 탄 아름다운 여인이 나제통문 부근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신라 병사들이 창칼로 위협하며 누구인지 물어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신라 병사들의 거듭되는 위협에 자신은 백제의 궁녀인 단이라고 하는데, 신라의 서울 서라벌로 가서 신라 임금을 즐겁게 하는 궁인이 되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 당시 신라의 태종 무열왕김유신과 신하들을 이끌고 백제의 서울 부여로 가는 중이었는데, 백제 백성들의 공격과 백제 장군 진무(振武)가 이끄는 의병들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진무 장군의 용맹함을 높이 산 무열왕은 진무 장군을 죽이지 말라고 명했지만 전쟁에 위협적인 존재인 진무 장군을 어쩔 수 없이 죽이게 되었다. 진무 장군이 죽은 지 얼마 안 된 때여서 경계가 심했는데, 이때 신라의 병사들이 단을 무열왕 앞으로 데려왔다.

김유신 장군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단이라는 백제의 궁녀를 경계하라고 왕에게 말했지만 무열왕은 모든 신하를 내보내고 단과 둘이 남았다. 단은 자신은 의자왕의 딸 비화라는 공주인데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왔다고 설명했다. 무열왕은 자신의 딸 소랑이 의자왕에게 죽은 이야기를 하며 비화에게 원수 갚는 일을 멈추고 자신의 딸이 되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비화는 품 안의 칼을 꺼내어 무열왕을 공격했다. 비화의 복수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무열왕은 비화를 용서했다. 그리고 비화가 밖에서 칼을 들고 기다리던 김유신 장군과 왕자 에게 해를 입지 않게 나제통문까지 배웅해 주었다.

[모티프 분석]

「원수와 은혜의 성」의 주요 모티프는 ‘복수’, ‘용서’ 등이다. 「원수와 은혜의 성」은 삼국 통일 전쟁 때,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적진에 용감하게 뛰어든 여성 인물 비화의 용맹함과, 자신에게 칼을 겨눈 자객 비화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신라 무열왕의 인물됨이 복수 모티프를 통해 대칭적으로 드러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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