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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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極樂殿-鶴大師 |
이칭/별칭 | 「안국사 단청이 미완성인 이유」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
집필자 | 김선아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극락전과 학대사」,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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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극락전과 학대사」, 『무주 군지』 중권에 수록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9년 - 「안국사 단청이 미완성인 이유」 채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3년 - 「안국사 단청이 미완성인 이유」, 『증편 한국 구비 문학 대계』-전라북도 무주군에 수록 |
관련 지명 | 안국사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
관련 지명 | 안국사 극락전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
관련 지명 | 향로봉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
채록지 | 초리 마을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
성격 | 설화|금기담|변신담 |
주요 등장 인물 | 난대학사 이면광|인아대사|학대사 |
모티프 유형 | 금기|변신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서 안국사의 극락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극락전과 학대사」는 안국사(安國寺)의 단청 채색 작업을 스스로 청한 노승이 100일 간 작업 현장을 들여다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긴 주지 스님 때문에 단청의 일부분을 칠하지 못하고 학이 되어 날아갔다는 금기담이자 변신담이다. 이를 「안국사 단청이 미완성인 이유」라고도 한다. 지금도 안국사에 있는 극락전의 단청 뒤쪽 일부분은 실제로 칠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채록/수집 상황]
「극락전과 학대사」는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전설집』에, 2004년 무주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간행한 『무주 군지』 중권 등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와 채록 장소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2013년 김익두·김월덕·허정주·백은철 등이 집필하고,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 구비 문학 대계』-전라북도 무주군에 「안국사 단청이 미완성인 이유」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9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초리 마을 회관에서 주민 이경환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여기에 채록된 「안국사 단청이 미완성인 이유」는 한국 구비 문학 대계(http://gubi.aks.ac.kr/web/TitleList.asp)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들을 수 있다.
[내용]
무주군 적상산에는 고려 충렬왕 때 최영 장군의 건의로 창건했다고 전하는 안국사라는 사찰이 있다. 안국사는 1613년(광해 5)에 사각(史閣)을 만들고 선원록(璿源錄)을 봉안했던 사찰이다. 무주부[지금의 무주군] 백성들은 나라의 귀한 실록이 봉안된 안국사를 무주부의 자부심으로 생각했다.
1864년(고종 원년)에 예문관 부제학이던 난대학사 이면광(李冕光)을 적상산 사고의 포쇄관으로 임명했다. 이면광은 안국사가 너무 낡아서 당시 승장이던 인아대사(仁雅大師)와 상의하여 조정에 보수 공사를 상소했다. 9월에 공사가 시작되어 안국사는 다음 해인 1865년에 새 모습을 갖추게 되었지만 이때 조정에서도 경복궁 중건 사업을 하고 있어서 단청공을 구할 수 없었다. 안국사의 불자들과 스님들은 보수 공사 축성식과 백일기도를 했다. 백일기도가 끝나고 얼마 후 안국사 극락전 앞마당에 행색이 남루하고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노승이 주지 스님[인아대사]을 찾아와 단청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사정을 들은 노승은 자신이 단청을 맡겠다고 청했다. 인아대사는 노승의 행색에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노승에게 단청 채색을 맡게 했다. 인아대사의 허락을 받은 노승은 바로 단청에 쓰일 물건을 구하러 떠났고 며칠 후 돌아왔는데 낡은 홑이불 같은 휘장 백여 장만 가지고 와서 휘장으로 극락전을 둘러쳐서 안이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석 달 열흘 동안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말고 자신이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발설치 말고 기다리라고 당부했다.
인아대사는 시간이 갈수록 일이 잘 되고 있는지 걱정이 됐지만 기도에 정진하며 의구심을 재웠다. 석 달 아흐레가 되자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인아대사는 극락전 앞으로 갔다. 인아대사가 극락전 가까이 가자 휘장 안에서 놀란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고 물러서자 다시 잠잠해졌다. 더욱 궁금해진 인아대사는 휘장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고, 이때 하얀 학 한 마리가 극락전 뒤 추녀에서 날아올라 향로봉 너머로 날아갔다.
인아대사는 자신이 인내심이 부족해 일을 그르친 것을 후회했다. 휘장이 벗겨진 극락전은 석양빛에 웅장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극락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법당 안의 찬란한 단청도 극락세계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는데, 학이 날아오른 극락전의 뒤 추녀 밑에는 단청을 미처 끝내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인아대사는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고, 후세 사람들은 그 노승을 ‘학대사(鶴大師)’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극락전과 학대사」의 주요 모티프는 ‘금기’, ‘변신’ 등이다. 100일 동안 들여다보지 말라거나 말하지 말라는 금기는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다. 「극락전과 학대사」에는 금기를 어긴 자신 때문에 일을 완성할 수 없게 된 데 대한 인아대사의 안타까운 심정이 드러나 있다. 금기를 어기고 안을 들여다본 인아대사 때문에 단청 채색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학으로 변신하여 날아간 노승의 존재는 안국사의 의미를 신성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