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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진 계곡마다 이야기를 담고, 구천동 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1363
한자 -谿谷-九千洞說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집필자 김영미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 일대에 전승되는 이야기.

[개설]

‘덕유산(德裕山)’이라는 이름 그대로 덕이 넉넉히 깃든 덕유산은 사계절 모두 헌걸찬 기상을 보여 주는 산이다. 해발 1,614m로 한국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이며, 12명산 중의 하나로 꼽힌다.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4개 군, 8개 면을 아우르고 있는 덕유산은 깊은 골에서 흘러내려 온 맑디맑은 물이 구천동 계곡용추 계곡을 타고 동쪽으로는 황강, 서쪽으로는 금강, 남쪽으로는 위천, 북쪽으로는 남대천과 만난다. 역사적으로 왜적이 침입해 왔을 때 백성들을 보호해 주었던 수호신의 역할을 함으로써 예사로운 산이 아님을 증명한 것 외에도 덕유산은 뛰어난 경치로도 범상치 않은 산이다. 특히 덕유산의 면면은 구천동 33경으로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준다. 특히 덕유산 국립 공원의 북쪽에는 28㎞에 걸쳐 흐르는 계곡 따라 펼쳐진 구천동 33경의 명소들이 위치해 있다.

나제통문(羅濟通門)에서 시작하여 은구암(隱龜岩), 와룡담(臥龍潭), 학소대(鶴巢台), 수심대(水心台), 구천폭포(九千瀑布), 연화폭(蓮花瀑), 백련사(白蓮寺) 등을 거치며 계곡을 따라 갖가지 소(沼)와 담(潭), 기암괴석들이 정상인 향적봉(香積峰)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여름철의 무성한 수풀과 맑은 물은 삼복더위를 잊게 해 주며,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철의 단풍과 겨울철 설경 등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들이다.

구천동 33경을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제1경 나제통문, 제2경 은구암, 제3경 청금대(聽琴台), 제4경 와룡담, 제5경 학소대, 제6경 일사대(一士台), 제7경 함벽소(涵碧沼), 제8경 가의암(可意岩), 제9경 추월담(秋月潭), 제10경 만조탄(晩釣灘), 제11경 파회(巴洄), 제12경 수심대, 제13경 세심대(洗心台), 제14경 수경대(水鏡台), 제15경 월하탄(月下灘), 제16경 인월담(印月潭), 제17경 사자담(獅子潭), 제18경 청류동(淸流洞), 제19경 비파담(琵琶潭), 제20경 다연대(茶煙台), 제21경 구월담(九月潭), 제22경 금포탄(琴浦灘), 제23경 호탄암(虎嘆岩), 제24경 청류계(淸流溪), 제25경 안심대(安心台), 제26경 신양담(新陽潭), 제27경 명경담(明鏡潭), 제28경 구천폭포, 제29경 백련담(白蓮潭), 제30경 연화폭, 제31경 이속대(離俗台), 제32경 백련사, 제33경 향적봉 등이다.

무주 구천동 지역에 전승되는 설화(說話)는 깊은 산속, 깊은 계곡의 산간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민중의 진솔한 생활 모습은 물론, 민중의 무의식적 욕망도 아울러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무주 구천동 설화를 세 갈래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구천동 33경마다 이야기를 담고]

무주 구천동 설화를 유형별로 살펴볼 때 지명이나 지형, 마을 형성과 관련된 유래담이 많다. 이러한 유래담은 마을의 산, 강, 고개 등 마을 역사를 설명하고 생활 공간을 역사적·사회적·우주적으로 해석하는 공동체 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무주 구천동은 높은 산과 깊고 구비진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내부를 볼 수 없는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곳이다. 무주 구천동은 그 깊이와 신비성만큼 풍성한 이야기를 낳았는데, 주로 ‘구천동’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이야기들이 전승되고 있다. 구천동 유래담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1. 구씨와 천씨의 터전 구천동, 그리고 암행어사 박문수

구씨와 천씨가 많이 살아서 그 두 성씨를 따서 ‘구천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대부분 이 유래담은 ‘어사(御史) 박문수(朴文秀)[1691~1756]’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주 구천동에 간 어사 박문수」, 「무주 구천동에 암행간 박문수」, 「무주 구천동에 출두한 박문수 어사」, 「박문수 어사의 무주 구천동 순행」, 「박문수와 무주 구천동 초씨」, 「박문수의 구천동 순행」, 「박문수 이야기」, 「어사 박문수의 일화」, 「화를 면하게 해 주고 결의형제 맺은 박문수」, 「구씨 부자를 구한 박문수」, 「박어사의 지혜」, 「박문수와 우복동의 반란」, 「구천동 유래」[이상 한국 구비 문학 대계(http://gubi.aks.ac.kr)], 「구천동과 박문수」[『내 고장 전설집』(1992)], 「어사 박문수」[『전북 구비 문화 자료집』(2008)] 등등 구천동과 어사 박문수 관련 설화는 대단히 많다. 이 설화의 각 내용들은 ‘무주 구천동’을 중심 화소로 두고 각 편마다 조금씩 변이 양상이 있지만, 대개 착한 구씨를 나쁜 천씨가 핍박하자 박문수가 어사출두를 하여 구해 주었다는 내용이다.

숙종 때 어사 박문수가 나그네 차림으로 무주를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한 외딴집에 들었는데 주인이 근심을 하고 있었다. 그 집 주인은 구재서[구씨 또는 유씨로 나타나기도 함]라는 사람인데 마을에 천동수[천득수, 천석두 등으로 나타나기도 함]라는 욕심 많은 사람이 구재서의 식구들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재서의 아들이 천동수의 부인을 꾀어내려 했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천동수가 구재서의 며느리를 데려가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사연을 들은 박문수는 다음날 무주 관아로 가서 군졸들을 준비시키고 황·청·흑·백 네 가지 색깔의 옷을 입혀 하늘에서 보낸 사자로 분장하여 천동수를 잡아 벌주었다. 천동수는 멀리 귀양 보내고, 구재서는 아들 며느리와 행복하게 살았다. 이후 마을에 구씨 사람들과 천씨 사람들이 어울려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2. 구천 명이 살 수 있는 둔지 구천동, 그리고 백련사

구천동의 지명 유래 중에 백련사와 관련된 「구천동과 설천」[『무주 군지』] 이야기가 있다. 백련사무주 구천동 계곡의 거의 끝부분인 해발 900m 지점에 있는 절이다. 백련사는 우리나라 절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빼어난 절경을 갖고 있다. 옛날에 백련사를 둘러싸고 빼어난 절경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의 수도승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여 그 수가 구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구천인(九千人)의 둔지(屯地)라는 의미의 ‘구천둔(九千屯)’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변하여 ‘구천동(九千洞)’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1552년 덕유산을 탐방하고 썼던 조선 명종 때 문신 임훈(林薰)[1500~1584]이 쓴 글에도 나온다. 임훈의 문집 『갈천집(葛川集)』의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에 따르면, “옛날에 그 골짜기에 9천 명의 성불공자(成佛功者)가 살았으므로 구천인의 둔지라는 뜻에서 구천둔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로부터 ‘구천둔’이란 지명이 ‘구천동’으로 바뀌어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구천동과 설천」 설화에서는 ‘구천동’ 지명과 관련하여 ‘설천(雪川)’이라는 지명 유래도 설명하고 있다. 백련사에 구천 명이나 되는 중들이 먹을 쌀을 계곡에서 씻으면 엄청난 쌀의 양 때문에 온통 흰 눈이 내린 듯 하얀 쌀뜨물이 구천동 계곡을 따라 아랫마을로 흘러내렸다 하여 구천동 아랫마을을 ‘설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천동의 유래담이 설천 마을 유래까지 확산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둔지’는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성불공자가 아닌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가 전래되기 훨씬 이전인 삼한 시대 때부터 9천 명의 호국 무사들이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주둔하였다’ 하여 ‘구천둔’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는 전설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신라의 화랑과 백제의 수사의 전신으로서, 이 구천둔 골짜기에 들어와서 심신을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라 화랑의 영랑(永郞), 술랑(述郞), 남랑(南郞), 안상(安詳) 등 사선(四仙)이 구천동 골짜기와 인접한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기거하였다는 전설과도 연관성을 살펴볼 만하다.

3. 중국 황제의 인정을 받은 땅 구천동

「구천동과 설천」 설화에 따르면, 구천동은 중국 원나라 임금 순제가 붙여준 이름이라는 것이다.

원(元)나라 황제는 어느 날 옥새를 잃고 찾을 수가 없었다. 황제는 고려 왕에게 옥새를 찾아 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때 지금의 구천동에 유해(劉海)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기로 유명했다. 고려 왕은 유해를 원나라로 보내 옥새를 찾도록 했다. 원나라로 들어간 유해는 한 달 안에 옥새를 찾아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초조했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만 계속 피우며 유해는 “에라, 모르겠다. 담배나 죽이자”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때 방 밖에서 유심히 유해의 행동을 살피고 있던 두 사나이가 사색이 되어 유해의 무릎 앞에 꿇어 엎드렸다. 이 두 사람은 담거와 배소였는데 옥새를 훔친 도둑들이었다. 유해의 “담배를 죽이자” 하는 말에 두 사람은 자기들을 죽이겠다는 말로 알고 용서를 빌게 된 것이다. 옥새를 찾은 황제는 유해에게 큰 잔치를 베풀고 후한 상도 주었다. 그리고 황제는 유해가 태어난 곳을 ‘구천동’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천승지국(天乘之國)의 구국제후(九國諸候)가 모여서 가히 축하할 만한 사람이 태어난 곳’이라는 뜻이었다. 깊은 산골이라고 생각했던 구천동이 이런 연유로 해서 ‘구천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상향이면서 구원자를 기다리는 양가적 땅, 구천동]

무주 구천동 설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것이 어사 박문수 관련 이야기이다. 박문수 전승은 전국적인 것으로, 원한이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민중들의 강력한 염원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지역 박문수 전승과 동일하다. 그러나 어사 박문수무주 구천동 지역에 유난히 자주 출몰하는 이야기는 무주 구천동만의 지역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주 구천동은 첩첩산중의 고립된 곳으로, 은둔과 피난의 십승지지(十勝之地)로서의 역할을 하며 신성함을 보존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립된 곳이기 때문에 중앙이나 관의 지배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여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외부와 차단된 무주 구천동 같은 곳에 암행어사가 출두하는 것은 다른 일반 지역보다 훨씬 더 극적인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었다. 중앙이나 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산간 오지 무주 구천동 사람들에게 암행어사 박문수는 특별한 구원자이자 영웅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 중의 하나는 구천동 박문수 설화가 많이 채록된 곳이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이라는 점이다. 무주 구천동 이야기인데 해당 지역보다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이 채록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은 무주 구천동 지역이 지리적·역사적으로 접경지로서의 경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백련사에 구천 명의 중들이 살고 있어서 ‘구천동’이라고 했다는 유래담에서 9천 명을 일반 백성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찍이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도사(道士)였던 격암(格庵) 남사고(南師古)는 『정감록(鄭鑑錄)』에서 구천동을 전란의 화가 미치지 않는 십승지지로 꼽으며 전란에 피할 수 있는 곳 중의 한 곳이라고 했다. 이는 구천동이 전쟁이나 양반의 수탈을 피해 9천 명 정도의 백성들이 넉넉히 살아갈 수 있을 만한 무릉도원 같은 곳이라는 민중 의식을 반영한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더불어 ‘구천동’ 이름이 중국 황제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이라는 설화 역시 ‘구천동’에 대한 민중의 자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구천동 설화를 통해서 양가적(兩價的)인 민중 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경치로는 신선이 살 만한 곳, 중국 황제가 인정해 준 곳, 전란이 유일하게 피해 가는 곳, 십승지지 중의 하나, 9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이상향적인 무주 구천동의 장소성이 드러난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박문수 설화를 통해 첩첩산중, 깊고 깊은 계곡, 심산유곡의 구천동은 중앙 정치의 관리와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곳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갇혀서 특별한 구원자를 기다리는 곳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양가적 감정은 바로 아름답지만 굽이진 계곡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무주 구천동만이 갖는 지역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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