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장종구 아저씨가 말하는 마을의 역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T03036
한자 장종구 아저씨가 말하는 마을의 歷史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백일마을
집필자 강정만

장종구 아저씨는 마을의 역사에 사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청도 김씨(金氏)가 처음으로 들어와 마을을 개척했다고 들었어. 하지만 후손들이 번성하지 못해 집성촌을 이루지 못했어. 우리 마을은 특정 성씨의 집성촌이 아니고 김씨, 이씨, 박씨, 장씨 등 각성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을의 유래는실상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 우리 마을이 실상사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가람 실상사가 한창 번성할 때 마을 사람들도 실상사의 스님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조달하며 생계를 꾸려나갔을 거야. 수복 당시 대항군(한국군)에게 총을 맞고 사망한 주민들이 많았어. 이른바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산내면은 대항군과 빨치산 간의 싸움이 치열했던 곳이야. 예전에 서울대학교 독문과 교수였던 박환덕 박사의 선친께서 산내 면장을 하실 때 빨치산에게 끌려가 돌아가신 일이 있었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박 교수님이 산내면에 있는 선친의 무덤을 종종 찾았는데, 요즘은 안 오시는 걸 보니 박 교수님의 고향인 운봉으로 묘를 이장했나봐. 옛날에는 전부 걸어 다녔잖아. 인월에 장이 서면 반나절 걸어서 인월장을 보았지. 또 선친께서 소금을 짊어지고 뱀사골을 통해 지리산을 넘어 화개 장터로 가서 장사를 했어. "

"근년에 들어와 우리 마을은 태풍 피해가 여러 차례 있었어. 2002년 8월말인가? 태풍 ‘루사’가 마을을 강타하더니, 복구가 다 끝나기도 전에 2003년 9월에 ‘매미’가 또 마을을 덮쳤어. 작년(2005년) 여름에도 산사태가 나서 피해를 입었어.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길과 다리가 훼손되어 큰 불편을 겪었지. 매번 수해가 날 때마다 군인들이 달려와 복구했어. 마을에는 노인들뿐이니 군인들이 아니면 누가 그 험한 일을 할 수 있겠어? 군인들도 내 자식과 같은 사람들이잖아. 한 번은 내가 주동하여 돼지라도 잡아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로하려고 했는데, 그 지휘관이 하는 말이 ‘민폐는 절대로 끼칠 수 없어요. 돼지 가지고 오면 부정(不正)이니 절대 오면 안돼요.’ 그런 말을 들으니 군인들에게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고 하지만 좀 아쉽더구먼. 우리 마을에 있었던 사건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야. "

장종구 아저씨 개인연표

1939년 / 일본 나고야 출생

1945년 / 해방을 맞아 귀국(구례 화엄사에서 잠시 거주)

1950년 / 한국전쟁 발발로 초등학교 중퇴

1959년 / 국방 의무, 21사단에서 34개월 근무

1967년 / 영광 김씨와 백일리에서 혼인

1968년 / 큰딸, 장경님을 낳음

1973년 / 큰아들, 장경우를 낳음

1977년 / 첫 부인과 사별

1987년 / 봉황석재 취직(20년 근무)

1991년 / 현재 부인과 백일리에서 재혼

1999년 / 정년 퇴직 후 농사

2001년 / 이장 취임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