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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석 할아버지의 가족과 친척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T05010
한자 정민석 할아버지의 家族과 親戚 이야기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뱀사골마을
집필자 김창민

출생과 청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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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석 할아버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와운이며 태어난 곳도 와운리이다. 3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외지로 나가지 못하고 아직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보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할아버지는 매우 엄하셔서 동네에서 호랑이 할아버지로 소문났으며 멀리서 거동하시는 것이 보이면 마을 젊은이들은 피해 다닐 정도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농사를 배웠고 그 이후 지금까지 마을에 계속 살고 있다.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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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석 할아버지, 손자와 함께

결혼은 24세 때 했다. 결혼 양식은 중매 반 연애 반이라고 할 수 있다. 부인이 같은 동네 사람이었다.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 어렸을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그러나 결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자 동네에 사는 사람이 중매를 섰다. 그 전에도 알고 지냈지만 중매를 하니 그 때부터 결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서 만나 결혼을 하기로 하였는데 처가쪽에서 반대를 하였다. 이유는 어른들이 엄하고 까다로워 시집살이가 힘들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중매를 선 할머니가 둘이 연애하는 것을 알고는 여자 집에 가서 ‘자네 딸 그 집에 안주면 다른 데 시집 갈 데 없다’고 부풀려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결혼이 성사되었다. 우리집이 엄하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시집 와서 고생도 많이 했다. 결혼 후 시조부모와 시부모를 모시고 한 집에서 살았으니까.

통과의례

통과의례로는 특별한 것이 없고 환갑을 하는 정도다. 과거에는 환갑을 아주 크게 하였으며 본인도 환갑 잔치를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환갑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면 욕을 먹는다. 과거에는 환갑이 동네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었지만 요즘은 부조를 받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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