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T05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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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김상중 아저씨의 家族과 親戚 이야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뱀사골마을 |
집필자 | 김창민 |
1. 가족과 친척 이야기
출생과 청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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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궁마을, 김상중 아저씨
1949년 달궁마을에서 태어났다. 달궁마을에는 현재 9대째 살고 있고 가장 오랫 동안 살아온 집안이다. 9대조 이후 계속 외동 아들로만 내려오다가 본인대에서 3남 3녀가 되었다. 그 중 본인은 막내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하였다. 달궁도 과거에는 농촌이었다. 논도 아주 많았다. 계곡을 따라 곳곳에 논이 있었으며 가을에는 계곡이 누렇게 벼가 익었다. 그리고 밭도 개간하였다. 산에 있는 나무를 제거하고 나뭇가지나 풀은 불질러 경지를 개간하였다. 그런 밭에는 무나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였다. 화전으로 경작한 밭이지만 한번 개간하면 계속 경작하였다. 새로 경작지를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지력이 다소 떨어져도 계속 경작하였다.
막내로 태어난 결과 집안에서는 별로 대접받지 못하였다. 위로 형님들이 계셨으니까 모든 것이 형님 위주로 되고 막내는 대우받지 못하였다.
여순반란사건 때는 인월로 소개되었다. 낮에는 군국이 장악하고 밤에는 반란군이 장악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낮 동안에는 마을에 올라와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하는 동안에는 군인이 주둔하였다. 그러나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모두 인월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런 세월을 5년 정도 보낸 뒤 다시 마을에 들어오는 것이 허가되었다.
소개되기 전, 그러니까 일제시대에는 마을이 60여 호는 되었다. 그러나 소개 된 이후 다시 들어올 때는 40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가 살다가 다시 산으로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도 마을 규모는 30여 호 정도 된다.
혼인
처가는 구례 산동이다. 22살이 되던 해 중매가 들어왔다. 산동은 전라남도이지만 달궁에서는 거리가 가깝다. 지리산의 재를 하나 넘으면 바로 산동이라 달궁과 덕동에서는 산동장을 많이 보았다.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좋은 처녀와 총각이 있다 하여 소개되었다. 중매로 만나 교제하던 중 아기가 생겼다. 그래서 23살 되던 해 첫 아이가 태어났다. 첫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였다. 본인은 3남매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