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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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里 |
영어음역 | Sangri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종익 |
성격 | 전설|지명유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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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상리|부처|조선의 공인 |
관련지명 | 상리 |
모티프 유형 | 부처의 지원|기술의 전수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서 상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92년 논산군이 출간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6-양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전기 때의 일이다. 일본에 상리라는 기와 공인이 살고 있었다. 상리의 기와 굽는 기술은 일본에서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해 조선에서 만든 기와를 본 상리는 깜짝 놀랐다. 조선의 기와 굽는 기술이 자신보다 한 단계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상리는 조선의 기와만큼 질 좋은 기와를 굽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리 기와를 구워도 조선의 기와를 따를 수 없었다.
상리는 산수 좋은 절을 찾아가 매일 목욕재계하며 부처 앞에 백일기도를 하였다. 100일이 되던 날 꿈속에서 부처가 나타나 “좋은 기와를 만들려면 조선으로 건너가 오산을 찾아가거라.”라고 말하였다. 상리는 부처의 지시대로 배를 타고 조선에 들어와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를 찾아갔다.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 도착한 상리는 기와 굽는 기술자를 찾아가 심부름을 하면서 하나하나 새로 배우기 시작하였다. 상리는 조선의 기술자들이 기와를 구울 때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정성에 놀랐다. 이렇게 몇 년 동안 상리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서 기와 굽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상리는 조선의 공인과 마찬가지로 질 좋은 기와를 구울 수 있게 되었다. 상리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의 공인 스승에게 감사해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상리는 일본에 도착하여 조선의 기와 굽는 기술을 널리 전하는 인물이 되었다.
한편 마을의 기와 굽는 공인들은 일본인 상리가 와서 수년간 기술을 배워 간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 또한 공인들은 상리의 부지런함을 칭찬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일본에서 기술을 배우러 온 상리의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어 오늘에 전하고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상리」의 주요 모티프는 ‘부처의 지원’과 ‘기술의 전수’이다. 일본의 기와 공인 상리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 와서 기술을 전수받았는데, 이에 연유하여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를 상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