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E01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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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경윤 |
주곡리의 청주양씨는 서원백파(西原伯派)로 원래 한양에서 살다가 중종연간에 첨정공 양춘건이 주곡리에 정착하였다. 현재도 청주양씨는 마을 인구의 50~60%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마을에 사람이 한창 북적이던 1970~1980년대는 70%가 넘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장, 새마을지도자, 동계 회장, 총무 등등 대부분의 주요직을 맡고 있어 마을 일에 적극적이며, 마을 내에 가장 큰 성씨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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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양씨 집성촌
마을 입구에서 700여m 정도 들어가면 청주양씨들이 대대로 살고 있는 윗뜸에 충헌사(忠憲祠)가 있다. 충헌사는 청주양씨의 사당으로 1626년에 건립하여 양기(楊起)를 주벽, 양치(楊治), 양희지(楊熙止), 양응춘(楊應春), 양훤(楊喧)을 배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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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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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헌사 전경
청주양씨 서원백파를 중심으로 매년 춘·추로 음력 3월과 9월 두 번째 중정일(中丁日)에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100여 명이 참석하는데 11시에서 12시반 까지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된다.
충헌사는 사당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마을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도 했다. 마을에서는 위패가 있는 충헌사 내에 문중서당인 영모당을 건립하고 청주양씨 자제들을 교육해 왔으며 청주양씨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동네는 물론 주변지역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무료로 글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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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헌사
1960년대까지 충헌사에는 글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었고, 이곳에는 항상 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으며 소문을 듣고 논산시내에서까지 글을 배우러 왔다. 이러한 영모당은 문중서당인 동시에 주곡리뿐만 아니라 그 일대 주변에서의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영모당의 대표적인 선생은 화곡(華谷) 양달혁(楊達赫), 숙인재(熟仁齋) 양치호(楊致灝), 심암(心菴) 양하석(楊夏錫), 그리고 마지막 선생인 학천(學川) 양희석(楊曦錫) 등이다.
그런데 영모당에서 배출된 문생들은 각 선생마다 문생계를 조직하여 매년 삼월삼짇날이 되면 스승의 묘소 앞에서 추모제향을 지냈다. 그중에서 심암 양하석의 문하생들이 1992년 ‘은사심암양하석선생추모비(恩師心菴楊夏錫先生追慕碑)’를 건립하였는데 이후 묘소에서 올리던 제향을 비석 앞에서 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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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헌사 경모재
양명석 씨는 이 마을이 교육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설명하였다.
"우리 동네는 충헌사에서 글을 알려줘서 밥은 못 먹고 살아도 다들 천자문은 알어. 청주양씨는 원래 양반가문이라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주곡리가 다인 줄 알고 살았지, 마을에서 제사 잘 모시고 일하면서... 그러나 지금 시대가 변했잖아, 그렇게 하고 어디 먹고 살겠어? 그냥 있는 것만 가지고 그것만 보고 사는 거지, 더 이상 바라지도 바랄 것도 없어."
같은 성씨가 한 마을에 살면 나이가 적은 사람이 촌수가 높을 수도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촌수가 낮은 경우도 있다. 요즘은 촌수를 따지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직도 주곡리 청주양씨들은 아직까지 촌수에 관한 예의는 깍듯하게 지키고 있다. 아무리 나이가 적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존댓말로 대하며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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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헌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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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헌사 재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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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헌사 고유제 지내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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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제를 지내는 충헌사의 모습
[정보 제공자]
양명석(1943년생, 새마을 지도자)
양화남(1942년생, 동계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