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6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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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巖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환 |
간행 시기/일시 | 1754년 - 『농암집』 재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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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854년 - 『농암집』 속집 간행 |
간행 시기/일시 | 1709년 9월 - 『농암집』 간행 |
소장처 |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
성격 | 문헌|전적 |
저자 | 김창협(金昌協) |
편자 | 김시좌(金時佐)|어유봉(魚有鳳)|조돈(趙暾) |
간행자 | 김수근(金洙根)[속집 간행] |
권책 | 권1~34[활자본]|권35~36[목판본] |
규격 | 21.5×14.6㎝[권1~권34]|20.5×15㎝[권35~권36] |
[정의]
1709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의 문집.
[저자]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이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고, 나성두(羅星斗)의 외손이며,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 문과에 전시 장원한 후 병조좌랑·사헌부 지평·이조좌랑·함경북도 병마평사·이조정랑·예조참의·대사간 등을 지냈다.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 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이조참판·대제학·예조판서·지돈령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평소에 부드럽고 화기가 가득하였지만, 의리를 변핵함에 있어서는 성조(聲調)를 높여 기절(氣節)이 강개하여 담봉(談鋒)을 범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학문은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설을 절충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편찬/간행 경위]
『농암집(農巖集)』은 문인(門人) 김시좌(金時佐)·어유봉(魚有鳳) 등이 수습하고 편정하여 1709년(숙종 35) 9월 김창협의 아우 김창흡(金昌翕)에게 서문을 받아 원집 34권 17책을 인행(印行)하였고, 이듬해에 목판으로 중간되었다. 이후 1754년(영조 30) 안동 부사 조돈(趙暾)이 안동부에 보관되어 있던 판목이 많아 완결(刓缺)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대폭 보각(補刻)하여 부록 2권 1책을 더해 36권 18책으로 재편하였다.
1854년(철종 5) 8월에는 5대손 김수근(金洙根)이 속집 2권 2책을 만들어 철활자(전사자)로 간행하였고, 1928년 김영한(金甯漢) 등이 원집 36권과 속집 2권을 연활자로 다시 간행하였는데, 이때에 원집과 속집에서 빠진 시문 및 후인들의 글을 수습하여 별집 4권을 함께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총 36권 18책으로, 권1~34는 활자본[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 권35~36은 목판본이다. 권1~권34는 1709년에, 권35~권36은 1754년에 간행되었다. 크기는 권1~권34는 21.5×14.6㎝, 권35~권36은 20.5×15㎝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농암집』 원집은 권두에 1709년(숙종 35) 9월에 김창흡이 지은 서문이 있고, 권1~6은 부(賦) 4편과 1673년부터 1702년까지의 시 890여 수가 저작 시기 순으로 실려 있다. 즉 권1은 1673년부터 1683년까지, 권2는 1684년부터 1686년까지, 권3은 1687년부터 1693년까지, 권4는 1694년부터 1696년까지, 권5는 1697년부터 1698년까지, 권6은 1699년부터 1702년까지의 작품이다.
권7~권9에는 소차(疏箚) 60편이 실려 있는데, 송시열(宋時烈)을 조정에 머물게 할 것을 청한 상소, 오현(五賢)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청한 상소, 명성 왕후의 초상에 백관의 상복을 일체 고례(古禮)를 따를 것을 청한 상소 등이다. 권10은 계(啓) 1편, 의(議) 1편, 강의(講義) 1편이며, 옥당고사(玉堂故事)가 첨부되어 있다. 권11~권20에는 서(書) 288편이 인물별,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11에는 아버지 김수항·큰아버지 김수증(金壽增)·외숙 나양좌(羅良佐)·형 김창집(金昌集)·아우 김창흡(金昌翕)·김창업(金昌業)·김창집(金昌緝)·종제 김창직(金昌直)·조카 김제겸(金濟謙)·아들 김숭겸(金崇謙) 등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권12에는 우암 송시열에게 올린 문목(問目)과 권상하(權尙夏)·조성기(趙聖期)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고, 권13에는 임영(林泳)·이희조(李喜朝)에게 보낸 편지, 권14에는 민이승(閔以升)에게 보낸 편지, 권15에는 권상유(權尙游)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권16에는 박심(朴鐔)·김유(金楺)·홍석보(洪錫輔)·김재해(金載海)·이현익(李顯益) 등에게 보낸 편지, 권17에는 남구만(南九萬)·이세백(李世白)·이유(李濡)·이여(李畬)·신완(申琓)·최석정(崔錫鼎)·김구(金構)·이이명(李頤命)·김주신(金柱臣)·오태주(吳泰周)·이징명(李徵明)·유득일(兪得一)·임방(任埅)·김해(金楷)·김성최(金聖最)·어사형(魚史衡), 권18에는 송상기(宋相琦)·김진규(金鎭圭)·민진원(閔鎭遠)·김극광(金克光)·최창대(崔昌大)·이의현(李宜顯), 권19는 족질 김시좌(金時佐), 권20에는 어유봉(魚有鳳)·이명화(李命華)·신무일(愼無逸)·이하곤(李夏坤)·오진주(吳晉周)·심억(沈檍) 등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권21~권22에는 서(序) 38편, 권23~24에는 기(記) 22편, 권25는 제발(題跋) 16편과 잡저(雜著) 9편, 권26에는 잡저 8편, 교서 2편, 전장(箋狀) 4편, 상량문 3편, 찬(贊) 2편, 명(銘) 2편, 축사 1편, 혼서(婚書) 2편이 실려 있다. 권27에는 묘지명 18편, 권28에는 신도비명 1편, 묘갈명 3편, 묘표 6편, 행장 2편이 실려 있으며, 권29~권30에는 제문 38편, 애사 6편이 실려 있다. 권31~권34는 잡지(雜識)이다. 권35~권36은 부록이다.
속집(續集)은 상하 2권으로, 김수항의 행장과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 등이 실려 있고, 별집 4권에는 권1 시 2편, 서(書) 9편, 서(序) 1편, 제문 1편, 행록 1편, 시책(試策) 1편이 실려 있으며, 권2~권4는 부록이다.
[의의와 평가]
『농암집』은 김창협의 저술을 총 정리하여 싣고 있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물론 조선 후기 노론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경제·사회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