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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촌리 백제토기산포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26
한자 瓦村里百濟土器散布地
이칭/별칭 연기 와촌리 기와말 백제토기 출토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백영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기/시대 백제시대 - 유물산포지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2년 - 6점의 토기가 신고됨
소재지 기와말 마을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814 인근지도보기
성격 유물산포지
소유자 국유
관리자 세종특별자치시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기와말 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유물산포지.

[개설]

연서면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4㎞ 지점에 연서면 와촌리 기와말 마을이 위치한다. 마을 입구에서 북쪽으로 인접한 지역에 옛 와촌초등학교가 있었으며, 백제토기 출토지는 와촌초등학교 뒤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나지막한 능선의 하단부에 해당한다. 현재 유물산포지는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인삼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유물산포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1982년 와촌리에 사는 이종문이 와촌리 산 42에서 채집하여 신고한 유물이다. 정확한 출토 상태는 알 수 없으나 신고된 6점의 토기가 모두 한 유구에서 출토된 것 같지는 않다. 호형토기(壺形土器)[항아리처럼 배가 부른 모양의 토기] 3점, 깊은바리토기[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 1점, 컵형토기 1점, 옹형토기(甕形土器)[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단지형 용기] 1점이 수습되었다.

[형태]

호형토기의 경우 3점이 조사 지역 내에서 출토되었다. 호의 밑면은 말각평저(抹角平底)[몸통과 각이 지지 않았으면서 모양이 넓적한 그릇의 바닥], 원저(圓底)[둥근 형태의 그릇 바닥]로 성형되었다. 표면에는 평행타날 뒤 횡침선과 격자문양이 시문되었다. 일부는 소위 ‘조족문’이 가미된 문양이 확인된다. 격자문양의 경우 토기의 밑면에서 시문된 것이 공통으로 확인된다. 태토는 석영과 정석 조각이 많이 혼입되었으며, 일부 소성 상태가 불량하여 모가지 및 아가리에 찌그러진 형태가 나타난다. 높이는 14.0~16.0㎝로 계측되며, 기벽 두께는 0.4㎝ 정도이다.

깊은바리토기는 1점이 수습되었다. 토기의 색조는 적갈색연질로 확인되며, 토기 모양[器形]은 평저로 곡선적인 동체부에 뒤집히는 아가리로 되어 있다. 동부 최대경은 윗부분에 있으며, 아가리 끝부분은 뾰족한 편이다. 동체부 윗부분에 격자타날이 이루어져 있으며, 내외면이 일부 떨어져 있다. 소성 상태는 양호하며, 질흙에는 굵은 석영이나 장석 조각이 많이 혼입되어 있다.

컵형토기는 암회청색 도질의 파수부완(把手附碗)[고대의 무덤부장용 또는 생활용기로 사용되던 토기]이다. 손잡이는 이미 파손되어 접착 흔적만 남아 있다. 소성 상태가 양호하다. 단면은 암적갈색, 내면은 암흑색을 띤다. 평저이며, 밖으로 벌어지면서 직립하다가 끝에서 약간 뒤집혀 있다. 표면에는 끝이 날카로운 돌대가 1조 돌려져 있다. 내면의 저부에는 가장자리를 따라가면서 홈이 나 있다.

옹형토기는 회청색 도질의 옹이다. 밑면이 일부 찌그러졌다. 밑면에는 정체 불명의 찌꺼기가 붙어 있으며, 일부분은 인위적으로 제거하였다. 동체부는 둥근 형태에 가까우며, 모가지는 직립하다가 아가리가 약간 뒤집혀 있다. 모가지와 아가리의 경계에는 1조의 돋을띠무늬가 돌려졌고, 아가리 끝의 면은 약간 둥근 느낌을 준다.

[출토 유물]

호형토기 3점, 깊은바리토기 1점, 컵형토기 1점, 옹형토기 1점 등 총 6점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와촌리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호형토기에서 확인된 이른바 ‘조족문’은 청주와 호남지역 출토 호에서 확인된 문양이고, 컵형토기 역시 청주 신봉동 고분군 출토품과 동형이어서 세종 지역의 4~5세기 토기문화는 청주지역과 동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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