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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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陽川許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윤희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624년(인조 2) - 허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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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600년대 중반 - 허돈 입향 추정 |
입향 시기/일시 | 1700년대 - 허징 입향 추정 |
분관|분종 시기/일시 | 1600년대 - 허주 청산공파로 분파 추정 |
분관|분종 시기/일시 | 1700년대 - 허징 덕천공파로 분파 추정 |
본관 | 양천허씨 본관 - 서울특별시 양천구 |
입향지 | 양천허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 |집현리 |
세거|집성지 | 양천허씨 세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 |집현리 |
성씨 시조 | 허선묵 |
입향 시조 | 허징 |
[정의]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돈, 허징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는 양천허씨 승지공파(承旨公派)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에 터를 이루었고, 덕천공파(德川公派)와 초당공파(草堂公派)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집현리에 정착한 이래 서로 이웃한 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연원]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묵은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許黃玉)의 31세손이다. 허선묵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와 전투를 할 때 식량과 마필을 보급해 주었다. 식량과 마필을 보급해 준 공으로 허선묵은 공암촌주(孔岩村主)에 봉해져 후손들이 공암을 관향(貫鄕)[시조가 태어난 곳]으로 삼았다. 이후 공암현이 양천현으로 바뀌면서 양천허씨라 부르게 되었다.
[입향 경위]
금남면 부용리 양천허씨 승지공파는 허돈(許惇)[1624~?]을 입향조로 삼는다. 허돈의 묘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즉동에 있고 손자인 허성(許晟)[1688~1743]의 묘가 부용리 양천허씨 종산(宗山)[한 문중의 조상을 모신 산] 초정(草井) 고개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허돈이 정착한 이후 손자 대에 이르러 번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양천허씨 청산공파(靑山公派)의 후손인 허징(許澄)은 금남면 봉기리에 정착하였다. 허징은 청산공파 파조인 허주(許晭)[1586~1656]의 증손자이며, 덕천현감을 지냈다. 이에 봉기리 양천허씨를 덕천공파라고 부른다. 덕천공파의 뚜렷한 입향 사유는 알 수 없다.
봉기리에는 양천허씨 덕천공파뿐 아니라 양천허씨 초당공파 후손들도 정착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현황]
금남면 부용리의 양천허씨는 1988년 8가구, 1995년 8가구로 확인된다. 봉기리의 양천허씨는 1988년 43가구, 1995년 21가구였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금남면 봉기리가 세종특별자치시 행정동인 한솔동과 금남면의 법정리인 집현리에 편입·분리되면서 봉기리의 양천허씨는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의 양천허씨는 1985년 141가구 529명,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양천허씨는 770명이다.
[관련 유적]
허무니[허문(許門)]라는 고개 지명이 있다. 양천허씨가 많이 살아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금남면 부용리 양천허씨는 매년 음력 10월 10일 향사(享祀)[제사를 치르는 일]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