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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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延日鄭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선빈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04년(선조 37) - 정현득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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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연일정씨 본관 - 연일 |
입향지 | 연일정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
묘소|세장지 | 정현득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정리 운주산 |
묘소|세장지 | 정린 묘소 - 장단 이목동 |
성씨 시조 | 정의경 |
입향 시조 | 정한득 |
[정의]
정의경을 시조로 하고 정현득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세종특별자치시의 연일정씨는 정원공파의 정현득이 임진왜란 때 전의현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과 집안인 정현득과 후손들의 묘소는 전의면 신정리 운주산에 있다.
[연원]
연일정씨(迎日鄭氏) 시조인 정종은(鄭宗殷)은 진한(辰韓) 사로(斯盧) 취산진지부(嘴山珍支部) 촌장 지백호(智伯虎)의 원손(遠孫)[먼 후세의 자손]으로, 신라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냈다.
정종은(鄭宗殷)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迎日戶長)을 지내고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하여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영일(迎日)로 하였다 한다.
본관은 영일(迎日)의 옛 지명을 따라 연일(延日), 영일(迎日)에서도 본고장인 오천(烏川)마을 이름을 따서 오천(烏川)으로 각각 쓰기도 하였으나 근래에는 연일(延日)로 통일하여 쓰고 있다.
[입향 경위]
전의면 신정리의 연일정씨는 정원공파이다. 입향조는 파조인 정원공(靖元公) 정진(鄭鎭)의 7세손인 정현득(鄭賢得)[?~1604]으로 알려져 있다. 정현득의 부친인 정린(鄭麟)[?~1592]은 무과로 입사하여 훈련원정을 지냈는데,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하여 1706년에 병조참판으로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되었다고 한다.
[현황]
정현득의 아들인 정연(鄭挻)[1598~1646]도 무과에 급제하였고, 병자호란 때 군공이 있어서 『강도록(江都錄)』에 기록되어 있다. 관직은 칠곡부사에 이르렀다고 한다. 정연의 묘소도 운주산 아래에 있다. 신정리 연일정씨는 무과 집안이라고 한다.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