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78 |
---|---|
한자 | 尹泰豊妻慶州崔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철원 |
출생 시기/일시 | 1843년(헌종 9) - 윤태풍 처 경주최씨 출생 |
---|---|
추모 시기/일시 | 1930년 - 윤태풍 처 경주최씨 정려 건립 |
출생지 | 윤태풍 처 경주최씨 출생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 |
사당|배향지 | 열녀 경주최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 229-1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경주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개설]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윤태풍(尹泰豊)의 부인으로, 남편은 파평윤씨이다. 경주최씨는 윤태풍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효로 섬겼다. 남편이 병들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약을 사서 간병하였으나 남편이 죽자 3년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호위를 하였다는 효열부이다.
[가계]
윤태풍 처 경주최씨의 아버지는 최규(崔珪)이다.
[활동 사항]
경주최씨[1843~?]는 1843년(헌종 9)에 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에서 최규의 딸로 태어나 파평 사람 윤태풍에게 출가하였다. 시댁이 워낙 가난하여 남편이 먼 곳으로 품팔이를 떠나는 바람에 최씨가 구걸하다시피 하여 시부모를 봉양하였으나 보람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이뿐만 아니라 품팔이를 떠난 남편이 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오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약을 사서 간병하였으나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이에 경주최씨는 손수 장례를 치르고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호랑이가 3년간 매일 밤 나타나 최씨를 지켜주었다.
[상훈과 추모]
지역 유림과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1930년 열녀 경주최씨 정려가 건립되었고, 1980년 처음 세운 곳에서 100m 위쪽인 현재 자리로 이건(移建)[건축물 따위를 옮겨 짓거나 세움]되었다. 열녀 경주최씨 정려는 2001년 5월 31일 연기군 향토유적 제25호 지정되었다가 2014년 9월 30일 해지되는 동시에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5호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