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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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塔祭 |
영어공식명칭 | Religious Ritual for a Pagoda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민정희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 입구에 세워진 돌탑에서 마을에 침입하는 잡귀·잡신·액운을 막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돌탑은 마을 어귀에 막돌을 원뿔대 모양으로 쌓아 만든다. 대개 할아버지탑, 할머니탑이라고 하여 2개를 쌓는데 서로 일정한 거리에서 마주 보도록 한다. 돌탑을 쌓는 까닭은 마을 바깥으로부터 침입할지 모르는 나쁜 액운이나 잡귀를 막아내기 위하여이다. 특히 마을의 허(虛)한 방위를 막는 역할을 한다. 풍수지리상 허한 방위는 마을 앞이 탁 트여서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을 주는 것을 뜻한다. 마치 먼 바깥으로부터 온갖 나쁜 기운들이 마을로 그대로 들어올 것만 같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돌탑을 마을 어귀에 쌓고 탑제를 지낸다.
돌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을 사람 모두 힘을 합하여 쌓는다. 청장년들이 큰 돌을 날라 오면 부녀자와 노인들은 가까운 곳에서 작은 돌을 주워 모은다. 돌탑을 쌓는 과정에 주민들의 단합된 마음이 담긴다. 돌탑을 쌓을 때는 터를 단단하게 다진다. 큰 돌을 바깥쪽에 둘러쌓고 작은 돌과 흙을 안쪽에 넣고 다지면서 한 켜씩 쌓아간다. 탑의 몸체가 완성되면 맨 꼭대기에 탑 윗돌을 얹는다. 돌탑 안쪽에는 마을 사람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어떤 물건을 넣어 놓기도 한다. 가령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오곡·밥주걱·쇠스랑 등을 넣거나 화재 예방을 하려고 숯이나 솥을 넣기도 한다.
해마다 음력 정초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탑제를 지낸다. 절차와 방법은 산신제, 거리제 등의 동제와 유사하다.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돌탑 앞에 차리고 제관은 유교식으로 제사를 올린다. 돌탑 주변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을 빈다. 순서상 할아버지탑을 먼저 위하고 할머니탑을 위한다. 탑제가 끝나면 한바탕 풍악을 울리고 음복한다.
[세종 지역의 탑제]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의 여러 마을에서 탑제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부강면 금호리 검시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열나흘에 마을 어귀의 동탑과 서탑[할아버지탑과 할머니탑]에 거리제라는 제사를 모신다. 천연두를 막기 위하여 돌탑에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금줄로 묶어 놓는 풍습이 있다. 금남면 남곡리에서는 과거에 음력 정월 열나흘이면 마을 어귀에서 탑제를 지내었다. 탑을 성황당탑이라고도 불렀다. 마을에 도로가 나면서 탑이 파괴되면서 탑제가 없어졌다. 금남면 박산리 마을에서는 위·아래 2곳에 돌탑이 있다. 제사 날짜는 음력 정월 열나흘이다. 금남면 박산리 돌탑은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4호 박산리 작약마을 쌍탑제’라는 명칭으로 지정되어 있다. 금남면 집현리에는 예전에 상탑[어른탑], 중탑, 하탑이라 하여 돌탑 3기가 있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모셨다.
금남면 호탄리에도 마을 입구 2곳에 각각 할아버지탑과 할머니탑이 있다. 지금도 음력 정월 열나흘이면 탑제를 모신다. 금남면 황룡2리 서북 마을의 2곳 진입로에는 각각 하나씩 수구맥이 선돌이 모셔져 있다. 할머니돌은 왼쪽 시냇물 건너편에 있고 할아버지돌은 오른쪽 둔덕에 있다. 할아버지돌과 할머니돌은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음력 정월 대보름 저녁에 제사를 모시는데 탑제 또는 석탑제라고 한다. 아마도 과거에는 서북 마을에 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남면 장재리에서도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마을 어귀의 탑이 없어질 때까지 음력 정월 초사흘이면 탑제를 모셨다.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의 탑제는 대부분 음력 정월 열나흘에 하당제로서 치러졌다. 탑이 있는 마을은 세종특별자치시 지역 중 부강면과 금남면에 집중되어 있어 금강 본류의 남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