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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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隱龍- |
영어공식명칭 | Eunyong Dur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규호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의 성인 남자들이 협력해서 농사를 짓는 촌락 단위의 공동노동조직.
[개설]
두레는 중남부 지역 논농사 지대에서 농촌 사회의 협력과 노동력 집약을 목적으로 마을 성인 남자 중심으로 조직된 공동 노동체 조직이다.
두레를 행한 노동의 대상은 모내기·물대기·김매기·벼베기·타작 등으로, 논농사의 전반적인 과정에 적용이 되었다.
특히 노동력을 많이 요구하는 모내기와 논매기의 경우에는 두레 투입이 필수적이었다.
모내기 날짜를 정하거나 여름 논매기 공동작업 운영 등 참여자 간 결속을 다지는 범공동체적 행위가 선행되었다.
실제로 두레는 해당 마을의 성인 남성 대부분이 의무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는 강제성과 집단성을 띠고 있었다.
[은용두레 유형]
봄두레에는 좌상과 부좌상 등 임원들이 모여 일정관리, 신입 두레꾼 승인, 품삯 정하기 등을 논의하였다.
여름두레는 7월 7일 칠석에 일반적으로 행하였다. 장군면 은용두레의 독특한 점은 여름두레를 하는 날의 농기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농기를 장군봉이 보이는 곳에 세우고 모든 두레 참여자가 이를 향하여 큰절을 올리는 깃고사를 행하였다고 한다.
[은용두레 구성]
은용두레는 장군면 은용리에서 행하던 두레로, 일반적으로 마을 남성이 16세 전후가 되었을 때 활동을 시작하여 항상 50명 내외의 수를 유지하였다고 전한다.
임원으로는 좌상, 부좌상, 공원이 있었다. 농기고사에는 풍장패 6명, 농기 4명이 동원되었다.
[부대행사]
논농사 이후 두레 참여자들이 토지 소유주의 집에 모여서 농악에 맞추어 음식과 술을 나누는 풋굿, 호미씻이 등 마을 공동 잔치 및 농기고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현황]
은용두레의 여름두레는 1968년까지, 봄두레는 1990년까지 지속되다가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원형이 사라지고 부분적인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