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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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億國民學校-四三遺蹟址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은희 |
건립 시기/일시 | 1948년 4월 28일 - 4·3 사건 당시 구억국민학교에서 정부군과 무장대간 평화 회담 개최, 결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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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구억초등학교 옛터 -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866-1번지 일대 |
성격 | 유적 |
[정의]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에 있었던 초등학교.
[개설]
구억국민학교 옛터는 1948년 4월 28일, 9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사령관 김달삼과의 평화회담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구억리는 4·3 사건 발발 직후인 1948년 4월 28일, 무장대 사령관 김달삼과 9연대장 김익렬 간에 소위 ‘4·28 평화회담’이 구억국민학교에서 열렸던 마을로 유명하다. 이 회담은 4·3 사건 발발 직후 유혈참극으로 가는 길목에서 열린 것이어서 만약 성사되었더라면 그 후 많은 인명희생은 막을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회담이었다. 그러나 결렬됐다.
평화회담이 열렸던 구억초등학교[옛 대정북공립초등학교]는 일제 시대에는 간이학교로, 해방 후에는 6년제 국민학교로 승격되어 구억리 아이들의 교육을 맡아왔던 곳이다. 3000여 평 규모에 넓은 운동장과 관사, 교실이 있었고, 4·3 사건 당시 교사로는 조석인, 송병길 씨가 소개 전까지 근무했다. 현재 학교 터는 밭으로 변해 있어 이전 흔적은 전혀 없다.
[위치]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866-1번지 일대로, 서부산업도로에서 모슬포 방면으로 가다 소인국 테마파크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돌려서 간다. 이 길을 따라 다시 서남쪽으로 가다보면 구억리 상동이라고 팻말이 붙은 버스정류소가 나온다. 이 곳에서 계속 100m 정도 더 가면 길 오른쪽에 허물어져가는 빨간 양철집이 보이는 밭이 있다. 이 곳이 옛 구억국민학교 터다.
[현황]
구억국민학교 운동장이었던 곳은 현재 밭으로 조성되어 있어 학교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의의와 평가]
구억국민학교에서 열렸던 4.28 평화회담은 제주 4.3 사건을 쌍방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해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회담은 결렬되어 정부군은 강경진압작전으로 제주도 4·3 사건을 처리했고, 제주도민 3만이라는 희생자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