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7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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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만익 |
입향 시기/일시 | 1392년 - 김해김씨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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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김해 김시 입향지 -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
세거|집성지 | 김해 김시 집성지 - 제주도 서귀포시 |
성씨 시조 | 김수로왕 |
입향 시조 | 김만희|김영선|김응주 |
[정의]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만희(金萬希)·김영선(金永善)·김응주(金膺珠) 등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는 성씨.
[개설]
김해김씨는 시조 김수로왕의 제12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뉜다. 김유신의 직계종파(直系宗派)는 고려 충혜왕 때 삼중대광에 오른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김녕군파[경파(京派)]와 그의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감무공파[사군파(四君派)], 그리고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판도판서공파[삼현파(三賢派)]이다. 각 파의 입도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여말과 조선 중엽에 제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을 지니고 제주에 입도하여 생활의 터전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연원]
제주의 김해김씨는 좌정승공일파·문경공파·양의공파·시중공일파로 나누어지며, 종세(宗勢) 면에서는 단연 좌정승공파가 앞서고 있다. 판도판서공파를 일명 삼현파(三賢派)라고 하는 것은 삼현으로 일컬어지는 김극일·김일손·김대유가 가문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경파(京派)·사군파(四君派)·삼현파(三賢派) 등이 전국을 배경으로 계보가 형성된 것에 비해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입향 경위]
입도조 김만희는 고려 유신으로 조선왕조 성립 후 출사를 거부하자 1392년(태조 1) 제주에 유배되어 애월읍 곽지리에서 일생을 마쳤다. 김영선은 1404년(태종 4)에 제주에 입도했으며, 김복모(金福模)는 1540년대에 제주목에 정착하였다. 세칭 ‘조천김씨(朝天金氏)’라 불릴 만큼 조천 일대에 후손들이 퍼졌으며, 김응빈(金膺斌)·김명식(金明植) 등 명사들이 배출되는 터전을 닦았다.
김신명(金信明)은 1550년(명종 5)에 사화를 피해 제주에 입도해 대정현 신도리에 정착하였다. 김기손(金起孫)은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해 가족을 제주목 외도에 정착시킨 후 다시 출륙하여 지리산 일대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김근한(金近漢)은 1620년(광해군 12)에 한성 부윤으로 있다가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상소를 올린 것이 화근이 되어 벼슬에서 물러나 제주에 입도해 한경면 판포리에 정착하였다. 김돈(金敦)은 1620년대에 정의 현감으로 제주에 도임했다가 임기 만료 후에도 출륙하지 않고 제주에 정착했다.
김응주는 1621년(광해군 13)에 직제학 수찬관으로 재직하다가 김직재(金直哉)의 무고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에 유배된 후 조천읍 함덕리에 정착했다. 김여선(金汝善)은 1632년(인조 10)에 제주목에, 김용남(金龍南)은 1646년(인조 24) 선략장군(宣略將軍) 훈련원 주부로 제주 판관에 부임하여 제주목 신촌리에 정착하였다.
[현황]
김해김씨는 제주도에 있는 성씨 중 제1위를 차지한다. 2000년 11월 현재 제주도 전체적으로 18,881가구에 61,395명이 살고 있다. 서귀포시 지역에서도 제1위 성씨로 3,948가구에 12,644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