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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897
한자 姜文範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금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0년 8월 18일연표보기 - 강문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9년 - 강문범 광주사범독서회 조직
몰년 시기/일시 1950년 1월 19일연표보기 - 강문범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강문범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강문범 출생지 - 제주 서귀포시 중문면 상예리
학교|수학지 전라남도 공립사범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필문대로 55
성격 항일운동
성별
대표 경력 광주사범독서회 조직교양위원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출신으로 광주학생운동 때에 활동을 한 항일 운동가.

[개설]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있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과 전남 공립사범학교 학생 및 광주 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이 항일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 행진을 전개하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강문범(姜文範)은 제주 서귀포시 중문면 상예리 출신으로 광주학생운동 때에 시위 활동을 주도하였고 이로 인해 1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강문범은 항일 운동 대한 공훈으로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활동 사항]

강문범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면 상예리에서 태어나 광주에 있는 전라남도 공립사범학교에 유학하였다. 1929년 7월 전라남도 공립사범학교 재학 중 송동식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독서회를 결성하여 활동하며 조직교양부 위원으로 조직 강화에 힘썼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강문범이 다니던 전라남도 공립 사범학교는 다음 날인 1929년 11월 4일부터 11일까지 휴교하였다. 11월 12일 다시 개교한 날 첫 시간에 강문범은 동지를 규합하여 광주 시내를 행진하며 시위활동을 펼쳤다.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보안법」위반 등으로 징역 3년 6월형을 언도받았다. 항소하여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2년에는 혁우동맹사건으로 검거되어 1933년 2월 28일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으며 동 4월 목포지청에 불법 구금에 대한 보상을 청구하였다.

1940년 독립운동가 김성숙이 설립한 가파도의 개량 서당 신유의숙(辛酉義塾)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섬 사람들에게 민족 계몽 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해방 후인 1947년 3·1운동 기념 시위사건과 1948년 4·3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서귀포경찰서 중문지서에 구금, 동년 12월 4일 천제연에서 총살당하였다. 그러나 뒤에 혐의가 없음이 밝혀져 복권되고 정부에서는 고인의 독립 유공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상훈과 추모]

강문범은 항일운동에 대한 공훈으로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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