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942 |
---|---|
한자 | 金務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웅철 |
출생 시기/일시 | 1913년 - 김무안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김무안 만보산 농민 학살 사건을 규탄하는 격문 배포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김무안 만보산 농민 학살 사건 규탄 격문 배포 사건으로 기소유예 처분 받음 |
출생지 | 김무안 출생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467번지 |
성격 | 항일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만보산 농민 학살 사건을 규탄하는 격문 배포 |
[정의]
일제 강점기 제주도 대정 출신의 항일운동가.
[가계]
김무안(金務安)[1913~?]은 1913년 가파리 467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아버지는 김성문이다. 독립운동가 회을 김성숙이 그의 5촌 당숙이다.
[활동 사항]
김무안은 5촌 당숙인 회을 김성숙이 세운 신유의숙을 거쳐 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1932년 실업전수학교에 재학중 ‘만보산 농민 학살 사건’이 발발하자 같은 대정 출신인 김만유·이갑문 등과 만보산 농민 학살 사건을 규탄하는 격문인 「전 조선 혁명적 학생들에게 격함」이라는 격문 2,000여 매를 제작하여 거리에서 배포하였다. 이 일로 만주로 피신하여 기소중지자가 되어 일경의 수배를 받았다.
이후 중국에서 독립군을 돕고, 상해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 인사들에게 군자금, 독립자금을 모금하거나, 운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