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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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光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한경면 저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규복 |
활동 시기/일시 | 1832년 3월 - 김광종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수로 개척 공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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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41년 9월 - 김광종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수로 개척 공사 완료 |
추모 시기/일시 | 1938년 5월 - 김광종 영세불망비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78년 - 김광종 영세불망비 한글비 건립 |
출생지 | 김광종 출생지 - 서귀포시 한경면 저지리 |
활동지 | 김광종 수로 개척지 -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
비석 | 김광종 추모비 - 안덕면 화순리 황개천[속칭 도채비 빌레][위도: N33°14´13.7411˝ 경도: E126°20´38.1918˝] |
성격 | 수로개척자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대표 경력 |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 수로 개척 |
[정의]
조선후기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일대의 수로 개척자.
[활동 사항]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출생으로 본관이 김해(金海)인 김광종(金光宗)은 1832년(순조 32) 3월부터 1841년(헌종 7) 9월까지 10여년에 걸쳐 오직 자신의 사재(私財)만을 이용하여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의 황개천 바위를 뚫고 약 1만여 평이나 되는 화순마을의 넓은 들에 물을 끌어올 수 있게 수로를 개척하였다. 당시 이 공사에 인부를 대고 자신의 재력을 바친 일은 중국 한(漢)나라의 태수(太守) 소신신(召信臣)의 선정과 버금가는 일로 평가되었다. 김광종의 업적에 대해 『제주향교지』에는 “바위를 뚫어 최초로 농업용수를 개발한 관개농업의 개척자”라고 평가하면서, ‘1832년(순조 32) 수로 공사 착공을 시작으로 10년 만에 1.100미터의 용수로 완공과 더불어 오만평을 개답(開畓)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김광종의 수로 개척은 한말(韓末) 채구석(蔡龜錫)의 중문(中文) 벼릿내(星川) 수로 개척과 일제 강점기 때 백창유(白昌由)의 어승생 물을 이용한 애월읍 광령리 수로 개척 업적과 함께 제주 삼대(三大) 수로 개척으로 불린다.
[상훈과 추모]
김광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화순리 사람들은 김광종를 전조(田祖)로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이후 수로로 혜택을 받은 농지의 주인들이 모여 화순답주회(和順畓主會)를 조직하고, 화순리 수로를 개척한 김광종의 공로비를 세우기로 결의하였다. 1938년 5월에 답주회 양시권(梁時權) 회장의 발기로 후손과 합의해 송운옥(宋雲玉)이 비문을 지어 5월 5일에 김해 김광종 영세불망비(金海金光宗 永世不忘碑)를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황개천[속칭 도채비빌레]에 건립하였다. 30년 후인 1978년에는 한문비가 어렵다는 이유로 당시 화순답주회원과 그의 6대손이었던 제주도 기획담당관 김창진(金昌辰)이 의논하여 원래 비석 옆에 한자를 번역한 비석을 새롭게 세워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