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산성 전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459
한자 花藏山城戰鬪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화장산성 전투 발발
발생|시작 장소 화장산성 전투 발발지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화장산성지도보기
성격 전투

[정의]

임진왜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화장산성(花藏山城)에서 벌어진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

[개설]

화장산성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화장산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 시대 산성이다. 의성군 비안면, 안평면, 안사면을 경계로 하여 370m 능선을 따라 약 4㎞의 산성이 수축되어 있다. 현재 천연의 암굴(岩窟)을 거점으로 한 유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화장(花藏)’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붙여진 것으로 그 의미는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조선환여승람』에는 “화장굴(花藏窟) 군의 동쪽에 있다. 그 깊이는 잴 수 없다. 임진왜란 때 관청의 장부와 문서를 감추었기 때문이다.[이름을 화장이라 한다.] 비굴(比屈)의 옛 이름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부산과 동래를 함락시킨 일본군은 빠르게 서울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제1군은 중로(中路),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제2군이 좌로(左路),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이끄는 제3군이 우로(右路)로 나뉘어 서울을 향하여 북상하였다. 비안현을 비롯한 의성 지역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제2군의 공격을 받았다.

[경과]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제2군이 비안현을 공격하자 비안의 백성들은 모두 화장산성에 모여서 군량미를 확보하고 성벽을 보수하는 등 일본군과 대치하였다. 화장산성을 거점으로 하여 의병이 모집되고 백성들이 항거하자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는 북상 진군 계획에 차질이 빚게 되었다.

[결과]

비안현은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했으나, 화장산성을 거점으로 지역 주민들과 의병들이 완강하게 맞서면서 가토 기요마사 군대의 화장산성 공략을 저지하였다. 한편 임진왜란으로 비안 향교를 비롯하여 건물과 가옥들이 소실되었지만 비안현 관아의 각종 공문서는 무사히 보존하였다고 전해진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당시 비안현은 서울을 향하는 길목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남해안 일대나 길목에 위치한 지역보다는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상주가 함락되고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가 비안현을 점령하자 지역 주민들은 화장산성을 거점으로 항전하여 화장산성을 지켜내고 일본 북상 진군 계획에 차질을 주었다. 이후 비안의 의병들과 백성들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 화장산성을 거점으로 하여 오랜 항전을 계속하고 적의 후방을 교란하는 데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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