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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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珪祥 |
영어음역 | Son Gyusang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우종 |
성격 | 종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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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 |
성별 | 남 |
생년 | 1902년 |
몰년 | 1963년 |
대표경력 | 대한불교진각종 종조 |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 출신의 종교인.
[활동사항]
회당 손규상은 1902년 5월 10일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 죽령(竹嶺)에서 출생하였다. 7세 때 서당에서 글을 익혔으며, 15세에 우산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닦았다. 졸업 후 가풍을 따라 2년간 의생(醫生)공부를 익혔고, 21세 때는 신학문에의 동경심을 버릴 수 없어 대구 계성중학교에 입학하고 수학하였다. 그러나 학생운동으로 휴교하면서 수학이 중단되자 일본 동경(東京)으로 유학길을 오르지만, 이후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사건이 발생하여 곧 귀국한 후 2년 동안 공직생활도 하였다. 25세 때 사업을 시작하여 어느 정도 번창하였으나 장남의 죽음을 계기로 불경을 접하고 사찰을 찾게 되었다. 1937년 포항 죽림사로 들어와 본격적인 불교 수행 길에 나섰으며, 그때부터 새벽정진을 시작하여 44세까지 약 10년 동안 불법의 정진과 실천에 정진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성서면에 마련한 도량에서 100일 정진을 마친 1947년 5월 16일 새로운 불법(佛法)의 도리를 체득하여 깨달음을 얻고 대한불교진각종을 세웠다[따라서 대한불교진각종에서는 1947년을 진각기원년이라 간주하고 있다].
이 때에 깨달은 육자진언의 묘과(妙果)는 그후 회당이 설한 가르침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아집(我執)에 쌓인 자신에서 벗어나 진실한 실상(實相)을 되찾기 위하여 자신을 철저하게 발견하는 ‘참회’를 하여야 된다는 ‘참회의 진리’라고 정리할 수 있다. 또한 ‘참회’에 의해서 자신의 참 모습이 드러나면 자신이 만상의 은혜에 쌓인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즉, 손규상이 깨달은 증과(證果)는 ‘참회의 진리’, ‘은혜의 자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47년 6월 14일에 경상북도 달성군 성선면 농림촌을 시작으로 경상북도 일대에서 교화활동을 시작, ‘참회원(懺悔園)’이라는 도량을 열고, 1950년 참회원을 서원당(誓願堂)과 심인당(心印堂)으로 수행도량을 이원화하였다. 1953년에는 종단(宗團)으로서 면목을 갖추기 위해 총의기구(總意機構)인 인회(印會)를 조직하여, 종단의 모든 일은 인회에서 결정하였다. 그 해 12월, 교명을 대한불교진각종 보살회(大韓佛敎眞覺宗 菩薩會)라 개칭하였으며, 1957년에는 진각종을 밀교종단으로서의 교상(敎相)과 삼밀선정법(三密禪定法) 등을 비롯한 수행법을 확립시켰다.
경전의 편찬·교화방편의 강구 등 종단의 내실을 기하고 전국에 심인당(心印堂) 설립을 계속하면서 교화에 전념하던 중 1963년 10월 11일 대중을 모아 놓고, 교계(敎戒)를 설한 후 10월 16일 62세로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