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10 |
---|---|
한자 | 宜樂堂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6세기 말 - 의락당 건립 |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2년 - 의락당 중건 |
현 소재지 | 의락당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 |
성격 | 누정 |
양식 | 소로수장|홑처마|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에 있는 정자.
[개설]
의락당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조경(曺瓊)이 건립한 정자이다. 조경의 본관은 창녕, 자는 중헌(仲獻)이며, 임진왜란 때 동생 조성(曺珹)과 더불어 수성장으로 활약해 공을 세워 동생과 함께 원종 공신에 책록되었다. 조경은 조호익(曺好益)의 문하에서 수학했는데 임진왜란이 끝나고 정자를 지어 동생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조호익이 이 정자를 ‘의락(宜樂)’이라 했고, 묘소는 금호읍 오계리에 있다.
[위치]
의락당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 강정마을에 있다. 금호읍에서 금창교를 지나 3.5㎞ 정도 가면 만취당 직전에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가면 구 창산초등학교에 건립한 최무선과학관이 나온다. 여기서 500m 전진하면 강정마을이 있고 이 마을 천변[대창천]에 의락당이 있다.
[변천]
의락당은 임진왜란 직후 조경이 군의 남쪽 창수리 호숫가[현 금호읍 삼호리 일대]에 건립했는데 후에 무너져 없어져 그 터조차 알 수 없었던 것을 후손들이 1961년 상량하고 1962년 준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건 기문은 후손 조규철(曺圭喆)이 기록했다. 구전과 문헌을 찾아 의락당의 구 터와 가까운 이곳에 중건했다.
[형태]
의락당은 방형의 시멘트 블록 담장 안에 ‘一’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진입은 우측면 담장에 난 일각문으로 통해 정자 툇마루로 오르는 정면 진입이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양 측면에 각 한 칸의 온돌방을 들인 다음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이다.
창호는 청방간에 사분합들문을 두어 공간 확장을 꾀했고, 대청 후면에는 쌍여닫이 판창을 내었다. 온돌방 전면에는 머름 위에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고, 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창을 두었다. 시멘트로 마감한 낮은 기단 위에 대강 다듬은 원형 주초를 앉힌 다음 퇴칸에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방주를 세웠다. 기단과 마루와의 높이차를 적게 했는데 이것은 진입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기둥 상부는 간결한 소로 수장으로 해 오량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처리하고 일식 기와를 이엇다.
[현황]
건물은 현재 농산물 보관 용도로 활용하고 실제 거주는 하지 않는다. 정자 전면 상부에 ‘의락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대청 상부에 상량문과 중건 기문이 걸려 있다. 의락당 서쪽에는 1919년에 건립한 서호정이 있고, 동쪽에는 창주서원이 있는데 이들 세 유적은 대창천변을 따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의락당은 현대에 중건한 건물로 근대 이후에 나타나는 건축적 특징이 보여 건축적 가치는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