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60
한자 安東權氏
영어공식명칭 Andong-Kwon Clan
이칭/별칭 화산권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안동 - 경상북도 안동시
입향지 입향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집성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창수면 가산리지도보기|영해면 괴시리지도보기|영해면 원구리지도보기|병곡면 송천리지도보기|병곡면 거무역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권행(權幸)
입향 시조 권책(權策)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책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개설]

안동권씨(安東權氏)는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권책(權策)을 입향조로 하는 성씨이다.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가산리, 영해면 괴시리·원구리, 병곡면 송천리·거무역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연원]

안동권씨의 시조는 권행이다. 권행은 신라 왕족의 후예로 본명은 김행(金幸)인데 안동 지역의 호족으로서 왕건(王建)을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치고 고려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은 김행을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태사공(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公)으로 봉하고 권씨 성과 고창(古昌)[안동의 옛 지명]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안동을 관향으로 삼았다.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안동권씨는 권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성으로 전국에 약 7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입향 경위]

안동권씨로 영덕 지역에 처음 입향한 인물은 오봉(五峯) 권책[?~?]이다. 권책은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종숙부인 권자신(權自愼)과 백형 권저(權箸), 중형 권서(權署) 등 일족이 참화를 당할 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겨우 참화를 면하고 영해로 귀양 와서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권책의 자손들은 신분을 감추고 숨어 살다시피 하다가 숙종 대에 사면되었다. 이후 권책은 종숙부 권자신, 8세손 권상길(權尙吉)과 함께 대봉서원(大峯書院)에 제향되었다. 권책의 후손들 중에는 9명이 문과에 급제하는 등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이로써 안동권씨는 조선시대 영해도호부 지역의 대표적인 사족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황]

권책 이후 3대는 독자로 이어오다가 현손 이후 자손이 번성하여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가산리, 영해면 괴시리·원구리, 병곡면 송천리·거무역리 등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영덕군 관내에 1,409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미곡리 소재 대봉재사(大峯齋舍)[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갈천리영덕 안동권씨 옥천재사[국가민속문화재], 인량리영덕 오봉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족당(知足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강파헌정침(江波軒正寢)[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해면 원구리곡강고택(曲江古宅)[경상북도 민속문화재], 괴시리대은종택(臺隱宗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덕 만송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병곡면 송천리영덕 송천세려고택(盈德松川世廬古宅)[경상북도 민속문화재], 각리리각리언곡재(角里彦谷齋)[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등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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