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리 영천이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76
한자 大枝里永川李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ingle-Clan Village of Yeongcheon-Lee Clan in Daeji-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대지1리 가질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43가구[2009년 기준]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대지리에 있는 영천 이씨 집성촌.

[개설]

영천이씨는 경상북도 영천을 관향으로 하고, 이문한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대지1리 영천이씨는 16세기 초에 성균진사 이학(李鶴)[생몰년 미상]이 이 마을에 입촌하여 정착한 이후 많은 인물을 배출하고 대를 이어 세거하여 영천이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대지1리달산면 소재지 마을이다. 대지리영덕읍 사이에는 높은 산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지품면 신양리를 거쳐서 우회해야 한다. 전체 주행 거리는 13㎞ 정도가 된다. 동쪽과 서쪽은 높은 산으로 막혀 있고 남북으로 긴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골짜기를 따라 옥계계곡에서 발원한 대서천이 마을 동쪽에서 활 모양으로 감아 돌아 넓은 들을 이루고 있다.

[명칭 유래]

대지1리는 '가질'이라고 부른다. 달산면의 양 계곡 중 큰 골 입구에 자리 잡고 있어서 ‘큰골’, ‘큰 가지[大枝]’라 하여 ‘가지골’, ‘가질(佳質·佳垤)’, ‘가지(嘉芝)’, ‘갓질’, ‘지동(枝洞)’ 등으로 불렀다는 견해가 있고, 주위 산세가 아름다워 ‘가질’, ‘가지’, ‘지곡’ 등으로 불렀다는 견해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대지곡리(大枝谷里)라 하여 영덕현 서면에 속하였고, 1914년에 영덕군 달산면 대지동이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태종 초[1400년경]에 평산신씨가 처음 들어와 잡목을 제거하고 터전을 일구었으며, 그 뒤 연산군 초[1500년경]에 영천이씨가 입촌하였다고 하여 ‘신씨 터전에 이씨 골목’이라 전해오고 있다.

영천이씨로 이 마을에 처음 입주한 이는 성균진사를 지낸 모고재(慕古齋) 이학이다. 이학은 영덕 입향조 참판 이유(李儒)의 6세손으로 16세기 초에 선조들이 살았던 영덕 직천[현재 강구면 원직리]에서 이 마을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학은 대서천 상류 모고산 암벽 위에 정자를 지어 모고재라 편액하고 산수를 즐기며 제자들에게 강학하였다. 이학의 넷째 아들 이여우(李如瑀)는 공조정랑을 지냈고, 손자 이화춘(李華春)은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워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훈되고 병조참판에 증직되는 등 후손 중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현황]

1992년에 대지1리 가질마을에는 총 85가구 중 영천이씨가 53가구였으며, 2009년에는 총 52가구 중 영천이씨가 43가구였다. 입촌조 이학이 건립한 모고재는 원래 암석 절벽 위에 자리하였으나 오랜 세월의 풍우로 퇴락하여 1669년에 현손 이명선(李明善)이 후손들과 협력하여 원형 그대로 현재 위치에 이건하였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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